곽정환 목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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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환 목사의 기도
곽정환 목사를 생각하면 40년전 그분이 기도하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1971년에 경기도 부평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그 때 나는 병기기지사령부 산하 60병기대대에서 군종병으로 있으면서 주일날은 물론 수요일 밤이 되면 열댓명의 병사들을 인솔하여 부평통일교회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때 부평지역장은 72가정 인종태씨였으며, 부평교회 부인전도대원(조장 박정민 권사)들이 우리부대에 와서 군인들과 함께 몇차례 합동예배를 보기도 했다.
한 번은 그 당시 인천지구장 곽정환 목사 순회 특별집회가 있었다. 그날도 나는 병사들을 인솔하여 집회에 참석 했다가 끝난 후 다른 사람들을 모두 귀대시키고 홀로 교회에 남았다가 지역장이 마련해준 숙소에 가서 곽정환 목사를 모시고 하루밤을 같이 잤다. 그건 곽목사님을 통해 은혜를 많이 받고싶어서 외박증을 끊어 가지고 나온 내가 특별히 청원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간단히 취침기도를 했는데, 곽목사는 꽤 오랫동안 기도를 드렸다. 나는 이양반이 무슨 기도를 그토록 간절히 하실까 궁금했다. 기도가 끝난 후 나는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질문을 했다. 그당시 협회가 처음으로 축복가정 부인들을 전부 동원하여 3년전도 활동을 하고, 승공활동을 대대적으로 펼치는 기간이었다. 때문에 나는 곽목사가 그와 관련된 기도를 하셨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변을 하였다.
곽정환 목사는 "나는 기도를 하며 오늘 하루동안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판단하고, 행동한 모든 내용들이 나 중심이었나,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것이었나를 돌이켜 보았어요.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일치하지 않은 게 없었나 반성하며 언제나 참부모님과 하나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간구했어요."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 답변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외적인 활동이 아닌 신앙의 본질을 놓고 기도하는 곽목사는 역시 훌륭한 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몇달이 지나 본부교회에서 곽목사를 만났는데 그분은 나에게 제대를 한 후 고양지역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만해도 협회발령이 곧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분의 제안을 듣고 얼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곽목사는 직답을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바라보며 '하나님 뜻을 순종하지 않으면 좋을 게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분이 그사이 벌써 하나님과 완전 일체가 되셨나, 아님 영적으로 교만해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당당하고 신념에찬 그의 태도가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곽목사는 통일가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올라 국내외적으로 많은 책임을 맡아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참부모님은 그를 '승리한 야곱'이라고 하시며 총애를 하셨다. 그는 국내외 수많은 집회에서 대회장을 맡아 천사장 나팔을 불고 "문선명 총재 내외분은 메시아, 재림주, 인류의 참부모"라고 증거를 하였다. 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참부모님의 고향인 정주와 안주를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승리한 야곱'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곽목사의 고향인 현풍은 물론 망우당 곽재우장군 사적지, 선조의 묘소 등 많은 곳을 직접 답사하고 문중대표 어른도 만나 보기까지 했다.
이토록 참부모님으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신임을 받고, 식구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곽정환목사가 몇 년전 부터 칩거하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참부모님의 부름을 받고도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있어 온갖 풍성한 루머의 중심점에 서있다. 통일가에는 그에 대해 크게 실망하여 원망울 넘어 규탄을 하는 사람이 점증하는 가운데, 아직도 그를 존경하고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좌우지간 수십년동안 참부모님의 분신체가 되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분이 요즈음 두문불출 칩거생활을 하자니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마음이 허전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자고 깨고, 오고 가고 ,보고, 듣고, 말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체를 참부모님과 일치된 생활을 하겠다고 간절히 기도하던 그분이 요즈음엔 과연 어떤 기도를 하고 사시는지 몹시 궁금하다.
* 필자가 직접 방문하여 쓴글들 *
http://blog.daum.net/wuban777/8160589 충익공 곽재우 생가지와 현고수
http://blog.daum.net/wuban777/8158930 의병 발상지 의령 충익사를 찾아서
http://blog.daum.net/wuban777/8217712 현풍곽씨 12정려(玄風郭氏 12旌閭). 곽정환 목사 고향.
http://blog.daum.net/wuban777/12963687 대구 망우공원의 곽재우장군 동상
http://blog.daum.net/wuban777/8989669 곽재우 장군이 도닦는 생활을 하던 망우정
http://blog.daum.net/wuban777/8215335 망우당 곽재우장군 묘소
http://blog.daum.net/wuban777/10201814 내가 만나 본 임진왜란 당시 한. 중. 일 장군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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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형님의 댓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비벼야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비비지 말아야 하는 게 정상이겠지요.
어디서든 출세를 하려면 손과 발을 많이 비벼야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비비지 말아야 하는 곳에서 비비게 되면 아첨꾼이나
간사한 음해꾼으로 몰리게 되는 일도 다반사로 나타나고
반대로 비벼야하는 곳에서 비비지 못하여 낙향한 지도자들도 여럿 있습니다.
우리 뜻 속에서도 잘 비비는 사람들은 좋은 자리로 영전도 하고
호시절을 만나서 어깨 힘주고 큰소리치는 바람난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몇몇이 그렇다는 것이니 발끈하시는 분이 안 계시길 믿어면서~~~
그렇지만 여기 선배님 사랑방에서는 부지런히 비비고,
생각하고, 몸부림도 치고 하여야 글자 한자라도 옮길 수가 있으니
일단 비비는 것이 나쁜 짓거리만은 아닌가 봅니다.
그런데 만약에 전철이나 어디 복잡한 곳에서 옆의 예쁜 사람들에게
볼을 비비거나 엉덩이를 비비면 추행범이지만
내 집 안방에서는 누구와 비벼도 흠이 되질 않으니
고종원 선배님, 윤덕명 선배님, 그리고 일팔 형제자매님들
많이 많이 비벼주셔서 홈이 부들, 보들, 나긋, 느긋하게
역사에 길이 남을 장으로 만들어 보심이 어떠하실까요?
한자리 앉은 자리서 한 시간을 넘게 보내면서
자리 한 칸 비벼 올리시는 이승갑 형제님처럼
끈기 있게 비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처음과 나중도 같다는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과연
우리의 처음은 어떠했으며 우리의 나중은 어디에서
어떻게 마무리가 될 것인지 심히 두렵고 떨립니다.
충신과 역적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유리하였었던
이조시대의 사색당파와 사화를 보아 왔었던 우리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지난 날 잘 못을 거울 삼아
악순환의 고리 끊고 선순환의 새역사 창조하는 거죠.
언젠가 나의 시집 가운데 "달빛의 말"이란 시가 있어
읊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내 개인적인 일이긴 해도
제 자신을 곡교천 변에 흐르는 달빛에 빗대어 보면서
지난 날 나의 삶을 뒤돌아보며 성찰해 보기도 했지요.
달빛은 지금/ 무언의 몸짓으로/ 내 시간의 바늘을 움
직인다/자 몸뚱이의 무게 앞에/견디다 못해 으스러지는/
내 위선의 옷자락 자꾸 벗겨진다/ 아픈 것은/저 강물이
아니다/흩날리는 것은/ 당신의 머리카락도 아니다/
출렁이는 섭리의 역사여!/ 방황했던 나의 족적이여!//
고회장님의 답답하고 안타까우신 심정을 알겠습니다.
손과 발이 마르고 닳도록 강구하고픈 그 심정이라면
틀림없이 하늘의 가호하심과 놀라운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임마누엘~~~!!!
윤덕명님의 댓글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태어날 때 부터 유전인자를 따라 살아 가도록 된
존재라는 생각이 짙습니다. 나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편이기 때문으로해
대부분 부자를 붙이고 살았지요. 부산부교회장. 승공연합의 서울부지부장
선문대학교에 첫 부임하면서 이요한 목사님을 모시면서 부목사 등등.....
낙향이든 귀향이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언젠가는 이 세상의 적에서 떨어져
타향이 아닌 고향이나 본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인지당행지도인 까닭에
낙향이면 어떻게 귀향이면 어떻겠사오리까? 어차피 생노병사란 그 길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니 당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운명론
내지는 숙명론적으로 생각한 사람들 가운데는 철학자들이 주종을 이루지요.
정해관님의 댓글
아마도 틀림없이 고박사님께서는 그리 하셨으리라 생각 합니다.
한편, 사색당쟁(이를 일제가 부정적 현상으로 쇠뇌시켰기 때문에 최근 민족사학자들은 정상적인 '정쟁'으로 부르자고 함)의 결과, 반대편이 정권을 잡고 설쳐댈 때는 그 꼴이 보기 싫거나 아니면 몸 보신 차원에서 낙향 한 경우도 많았지요. 아마도 저는 후자 쪽의 낙향을 했을 가능성이 많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선배님들께서 이토록 관심을 쏟으시는데, 우리 형제들은 워낙 숫기가 많아? 낮가림이 심해서? 그냥 보고 지나침이 도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전에 없는 댓글 시리즈에 자리를 함께 합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것은 누구나 다 동일하지만 그 크기나 형태는 다양한 것
개성진리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사람도 대신 할
수 없는 개성독특체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기도 합니다.
다양한 여론과 이견들을 두루두루 허용, 수용.포용, 관용을
한다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길이기도 할 것이고 그럼으로해
원수가 친구로 화하는 온전한 승자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라
부족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실개천이 도랑물로 도랑물이 시냇물로 시샛물 강물이 되어
급기야는 대해를 이뤄 바다에 만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우리가 갑론을박 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뜻
이루자고 하는 것임 분명한 까닭에 승리는 모두의 것입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우리는 톱다운 방식의 시스템이어서 그동안 토론문화에 익숙치 못했습니다.
자식들이 어리고 무식할 경우에는 "야 이놈들, 애비가 하라는대로 해."라면 꼼짝 못했지만
자녀들이 장성하여 머리가 커지면 "아버지는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하고 대드는 놈도 생깁니다.
우리 통일가도 이제 무조건적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건전한 방식의 토론문화가 황성화할 때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윤시인님과 정해관님이 좋의 의견을 많이 내주셨는데
나는 더 다양한 의견이 많이 나와 열띄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만
아직 그런 입장이 못되어 조금 아쉽습니다.
해방구사람들 까지도 다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여 서로가
각기다른 의견을 받으면 자기 생각에 대한 객관적 검증도 받으며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엇으면 좋겠습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이 방 저 방 해도 서방이 제일이라는 속어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를 일입니다만 모든 것을
사랑의 마음으로 보면 얼굴의 얼근 모습도 보조개로
보이지만 미움이나 분개, 분노 분심으로 보면 몰골로
보이는 것이 사랑의 기술 내지는 마력 아닌가 봅니다.
어혈이 되면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와서 병원으로 가고
언로가 막히면 일방통행 만이 있어 쌍방통행 사랴져서
흐르는 물이 되기 보다는 고인물이 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는 있지만 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은 다른 것!
지행합일, 언행일체, 심신일체는 지도자의 최고덕목이고
세상의 모든 리더가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감초일 겁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며칠 전 천복궁에서 지도자-식구 결의대회가 있었드시, 작금의 심각한 사태는 분명 \'강건너 불\'이 아니고, 초창기 1세 원로로서 \'오불관언\' 해서도 안 되는 상황인 까닭에, 우리 사랑방에서도 나름대로의 \'행동\'이 필요했는데, 마침 선배님들께서 화두로 여러 견해를 나타내 주시어 최소한의 \'체면\'은 세웠다는 생각 입니다.
고박사님의 언급대로 \'현직\'의 분들은 드러내어 발설(자기의 소신을)하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 입니다.
특히 공직자는 \'다수의 의견\'이 중요하지만서도, \'길을 벗어난 작은 양 하나도 지극히 소중한 까닭\'에 혹시나 상처를 받을 한 사람의 식구라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할 입장이 있어, 말을 삼가하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은인자중하시던 원로 선배님을 모시고 \'결의대회\'를 할 수 있었음은 만시지탄의 감은 없지 않지만, 매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종종 말씀드리지만, 어느 특정 지역에 가면, 완전히 \'해방구\'가 되어, 분파를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막말들을 해대고, 그 쪽에서는 그것이 다수 의견이 되는데, 문제는 사랑하는 우리 2~3세들이 균형잡힌 가치관이 형성되도록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앞날의 희망인 대학원리연구회가 적어도 사이버상으로는 맥을 못추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거 시급한 과제 입니다.
그런 연유로 저도 공식적으로 가정회 임원을 맡지 않아 홀가분하게 마음껏 저의 의견을 표출하고 있답니다.
다만 이것이 저와 의견이 다른 형제자매님들의 마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러워 집니다.
서로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우리가 넘이가!' 한다면, 이해못할 일도, 정죄할 일도, 화 낼 일도, 욕할 일도 아니리라 여깁니다. 그래도 화를 내신다면,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빕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그리고 그를 위하여 기도를 주어야 할 대상이란 것도
우리가 간과 할 수 없는 까닭은 사탄도 사탄시 한다면
영원한 승자가 존재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다가 보면 자식이 아무리 자기의
말씀을 안 들어도 그 자식의 출처가 부모인 까닭이기에
어떤 잘 못도 용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 하지요.
신인지관계가 부자지인연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이것을 통하여 원리적으로 바로 인도 할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또 우리들이 이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 주거나 인정해 주는 것은 더욱 원치 않습니다.
단지 내 양심에서 우러나는 진실을 거론하고픈 것이죠.
이럴 때 생각나는 시가 한 편 있는데 고박사님께서도 잘
알고 있는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그 시 말입니다.
임은 까딱 않는데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 오랜 세월
파도가 멍들어서 바다의 물빛이 퍼렇다고 하였던가요?
깊은 시름 가슴 조아리시는 참부모님의 심중인들 얼마나
애간장 타시고 답답하시며 혈루로 말씀 하시고 계시온데
능력과 실력 보다 심정과 영력이 중요함을 실감합니다만
신사복으로 착복 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윤시인님께서도 심적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으시군요.
그러나 나는 어떤 사감 때문에 이런글을 쓰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복귀원리가 시종일관 가르치는 게 나중심한 것이 역사를 망쳤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참부모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참자녀님이라 할지라도
참부모님의 품을 떠나 자기 중심으로 활동하면 역사는 그를 불효자, 탕자로 기록할 것입니다.
곽목사님은 참부모님 가정의 참자녀님들에 대해서는 일체 거론조차 하지 말라고 수차례 말씀 했습니다.
그 분이 현시점에서 함구하고 있는 것이 참부모님 앞에 충성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 또한 후대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나는 평소 사극을 즐겨 봅니다.
요즈음은 임금 앞에서 "마마~ 죽을 죄를 졌습니다. 죽여주시옵소서."하는 충신들의 울부짖음이 내 마음을 크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효자요, 충신이라면 메시아 재림주님께서 자기에게 책망을 하시면 자기의 잘 잘못을 떠나 무조건 아버지 앞에 나와 "마마(참부모님)~ 죽을 죄를 졌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라고 해야 마땅한 게 아닙니까?
고종원님의 댓글
통일교 지도자의 리더십은 참부모님 중심으로 하나되야 합니다.
머리와 중추신경이 따로 놀아서 되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성격이 다른 개성진리체지만 파워께임을 하는 정치판에서는 편짜기가 필요하지만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의 평화로운 통일을 목표로 하는 우리에게는
파당을 만드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젊었을 때 모든 것을 참부모님과 일치된 삶을 살겠다고 그처럼 간구하시던 분의 실제 삶이
왜그렇게 사조직을 중시하는 분으로 변모하였는지 연구대상 입니다.
현직에 있는 최고지도자들이 직접만나 결자해지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고 하셨죠?
나도 완전 동의 합니다. 그러나 참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는 사람들인데 그게 가능 하겠습니까?
지금 많은 축복가정 가정이 부모와 자녀, 형과 아우가 양쪽으로 갈리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현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나, 선배가정들은 특성상 바른 소리를 하기가 힘듭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원리적으로 바로 인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들의 열띈 토론이 이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나도 2남6녀의 장남이요 종손으로써 겪은 삶에
견주면 참으로 정답고 아름다운 오누이의 사랑이
오늘따라 부러워지는 까닭 무었인지 생각합니다.
성10회 졸업과 동시에 일선 구역장으로 접어들어
진주교역 미천면 구역장을 66년 3월1일 부로 받고
4개월이 지나니까 당시 우종직(72가정)지역장께서
16명 구역장 중 날 진주교회 총무로 임명하였지요.
총포사로 살림을 꾸리고 때로는 동냥 아닌 동냥에
어려운 살림 하면서 진주 남강에서 새벽 4시 일어나
그 추운 엄동설한에 냉수목욕으로 특별정성 드리며
서장대에서 단심가를 부르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논개와 대화하고 김시민 장군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진주도성 복귀를 위하여 흘린 그 눈물이 마르지 않아
1974년 3월1일 부로 꼭 8년 만에 진주교역장으로써
복귀하여 A타입 성전을 전국에서 2번 째로 지었지요.
지금은 그 자리에 3층으로 현대식 건물이 성전으로
진주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당시 대지매입
김영휘 협회장과 고 박종구 전도부장이 직접 오셔서
자리를 정해 주시고 어렵게 교회를 짓기도 하였지요.
천복궁의 김교구장께서 현대식 건물로 성전을 짓고
서울로 오신 것으로 압니다만 내가 한 때 시무하였던
마포교회도 임교구장이 시작했지만 김교구장이 준공
그 분은 교회를 짓기로는 소문난 목회자이기도 하죠.
나도 곽목사께서 사병화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힘이 없는 사람으로써 내 할 일만 열심히 한 그 결과
불이익을 톡톡히 당한 사람이기도 합니다만 그 때도
절대라는 단어 앞에 꼼짝도 못하고 당하고 말았지요.
군대시절 제식 훈련을 할 때 내가 느낀 것 가운데 하나
젤 먼저가는 병사와 젤 뒤에 가는 병사 있게 마련인데
뒤로 돌아갓 하면 먼저가는 자가 나중 되고 뒤에 간자
먼저 된자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놀리요 순리죠.
윤덕명님의 댓글
공허하고 혼돈한 가운데 시작을 한 것을 알고 있어
그래서 회장님께선 희망이 있고 미래가 밝다는 것!
왜냐면 혼돈과 질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쌍전함으로.
숱한 곡절과 만고풍상 겪어신 고회장님의 노하우로
파란만장한 우리의 역사가 제 자리에서 기능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심려하심으로 인해
심정문학회가 산고를 겪고 해산했음은 의미가 깊죠.
복귀섭리의 구비구비 노정마다 피망울 맺히지 않은
아니한 가정이 어디 있으며 곡절이 없는 역사가 그리
흔치 아니하고 모든 중심인물들이 그러한 길 갔으니
우리도 그길을 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나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데미지를 입었다면 크게 입은
나만의 속사정이 있지만 그분의 철학과 리더십이겠거니
하고 자위하는 것 밖에는 상책이 없기도 한 사연있기에
그 분을 추호도 두둔하거나 옹호하려는 것 아닙니다.
다만 고회장님의 말씀처럼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는
옳은 것 옳다하고 틀린 것 틀렸다 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것이지만 만날 수 없는 처지가
우리들을 곤혹스럽게 혹은 안타깝게 만드는 거겠지요.
소견으로는 현직에 있는 최고 지도자들이 심사숙고하셔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라도 직접 만나서 결자해지하는
그 방법이 가장 현명하고 손쉬운 방법이지 먼 거리에서
핑퐁을 친다면 그 공이 득점과 연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역적의 가문에서 역적이 나온다는 말을 진리로 알고 믿었습니다.
청백리 곽안방(郭安邦)이 현풍에 자리를 잡고
솔례(率禮)라 명명한 것도 뜻이 깊다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현풍곽씨 12정려(玄風郭氏 12旌閭) 가 서 있는 것도 뮤척 기뻤습니다.
과연 승리한 야곱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혼돈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어찌 솔례(率禮)에서 메시아, 구세주, 평화의 왕 앞에 크게 실례하는 인물이 나올 수 있으며
12정려를 부끄럽게 하고, 영원한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인물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
실로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끼며 통곡하고 싶은 심정 입니다.
천륜을 저버리는 자는 조상들 앞에도 고개를 들 수 없는 법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단 말입니까?
윤덕명님의 댓글
지금부터 235년 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트 홀에서 독립선언문을 선포
약 8년 간을 싸우다가 1783년 9.3일 완전독립 되었죠.
고회장님의 사려깊은 관찰과 탐문을 통하여서 그동안
잘 몰랐던 여러가지의 정보를 입수하여 많은 도움되고
후학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현풍의 12정례각
그리고 솔례마을의 유래를 비롯한 호국정신 배웁니다.
40년 전의 회고담을 들으면서 나의 지난 뜻 가운데서
걸어왔던 노정을 떠 올려보기도 합니다. 타산지것으로
삼아야 할 소중한 말씀으로 여깁니다. 저 역시 중 3때인
1962년 멋모르고 원리를 접하였던 그 시절 말입니다요.
그러다가 철이 좀 들어서 64년 4월5일 식목일에 비로소
정식으로 입회원서를 제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만
지나고 보면 다 하늘의 보호하심과 사랑이였음을 통감하고
언제가 고맙고 감사 할 따름입니다. 섭리의 중심에 있음을.
경남에서 목회 12년 이후 승공연합 9년 도합 21년 노정 후
89년 선문대학에 와서 고회장님의 바톤을 이어 받아서 난
당시 이 요한 목사님을 모신 부교목의 자격으로 왔었지요.
10년 간의 교목과 12년 간의 교원생활도 꼭 1년 남았어요.
내가 22년 간 살아온 천안과 아산은 나의 제2의 고향인 것!
서진석 초대 이사장 비롯, 김영휘, 곽정환. 석준호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윤세원 초대 총장에서 이경준, 김봉태
총장을 비롯한 학교의 발전사를 잘 알고 있어 감회가 깊어요.
만만사가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뜻 안에서 만사형통으로 잘
해결되기 만을 간절히 간구하고 기도할 따름이지만 우리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참사랑의 본질을 피차가 가슴 속에
깊이 새겨서 고회장님의 염려가 종식 되기를 빌어 앙망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대전고와 고려대 상대 출신이 말해주듯, 머리회전이 빠른 찬형씨는 요즈음, 모든 종교를 통섭하는 새로운 원리책(?) 저작활동에 여념이 없답니다. 그러나 우리 교단을 비판하거나 분파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아(따르는 분이 아직은 없는듯)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곽목사님은 참부모님의 가장 크신 신뢰를 받으셨고 그 결과 모든 중요 책임을 맡으셔서 복귀섭리 도상에 큰 공로를 쌓으신 '믿음의 대표'이셨음에 틀림 없다고 생각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곽목사님께서 책임자로 계시는 동안 기업체와 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작지 않은 신세를 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입니다.
막중한 사명자셨던 그 분에 대한 통일 식구들의 감정이 '복귀'되기를 오늘도 경배의 제목으로 삼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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