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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과 십계명의 관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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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시는 첫 계명의 축복과 약속~~~~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여러분!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누가 말하였나요?

가정의 달을 맞아서 성격속의 한 말씀을 새겨봅니다.

성경; 에베소서 6장1~3절 말씀을 요약하면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세상에서나 우리들 뜻 속에서도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모든 종교는 물론이거니와 특히나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칠 때에

이삭이 부친 아브라함에게 순종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삭의 나이는 지금의 청소년 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땔감을 등에 짊어지고 그 높은 산에 올라갈 정도라면 힘이 청년 못지않을

정도의 나이가 된 것입니다.

한데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120세가 가까울 정도로

양한마리도 잡기 힘든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삭은 자신을 결박하는 아버님께 반항하지 않고 모든 것을 순순히 내 맡겼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니까 순종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목숨까지 드린다고 한다면 이보다 더 큰 효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홀로 남겨질 육신의 모친 마리아를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달려 숨이 떠나기 직전에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보라 이제부터는 네 어머니로다” 비록 십자가에서 죽으시지만 모친을 보살피시는

예수님의 효성을 우리가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랑입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혈육인 부모님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효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육인 내 어버이를 내 몸처럼 모시지 못한다면

어딜 가서 효를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효를 생각하면 유교를 떠올리기 쉽지만

유교를 생각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사입니다.

제사는 살아있는 자가 아닌 돌아가신 부모님께 예를 갖추는 것이 제사입니다.

제사보다는 순종이라고 살아계실 때에 손발 한 번 더 씻겨드리는 것이 효가 아닐까요.

그리고 특별히 효는 살아있는 우리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왜 하나님이 명령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고

효를 행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여러 부분에 걸쳐서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가 보통 십계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보면

1계명~5계명, 6계명~10계명. 1~5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부분,

6~10은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한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5계명입니다.

어째서 부모공경이 하나님께 대한 부분이겠습니까?

부모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께 대한 계명은

모두가 복과 저주에 관련된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않으면 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대대에 걸쳐 복을 받지만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저주와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번째 계명부터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그렇게 안했다고 무슨 복이 임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내리는 명령일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그렇게 축복과 저주가 결과적으로 따르게 되는 매우 중요한 계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서 축복과 저주, 상과 벌을 함께 주신 것이 약속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효는 공자의 유교정신도 아니고

도덕이나 양심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만고불변 우주의 질서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내려주신 질서의 법칙과,

사랑의 법칙일 것입니다.

십계명이야 말로 이렇게 인간들에게 제정하신 법칙이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행위임을 우리는 필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왜 이런 명령을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 더 많은 복을 주시려고 조건들을 세우셨습니다.

주고 또 주고도 잊어버리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의 축복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부모님 모심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일 겁니다.

참부모님께서 주신 큰 은사, 축복으로 가족이 된 우리에게는

모든 축복가정이 형제자매요, 부모요, 자녀가 되는 것일 겁니다.

하늘을 위하여 부모자식을 버리는 자는 백배 천배를 상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진정한 참사랑이 있다면 남의 자녀도 내 자녀같이 예뻐 보일 것입니다.

남의 자녀를 통해서 내 자녀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됩니다.

마음에 평안함을 가져다주며 원로하신 선배 형제자매님들을 뵐 때

그런 잔잔한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서 핵심은 부모도 아니고 순종도 아닙니다.

주 안이라는 단어입니다.

주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비로소 부모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부모공경이 마땅한 도리요 하나님의 뜻이란 것이지요.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 내 힘으로는, 내 의지로는, 내 감정으로는

그런 순종은 있을 수 없겠지만 주님 안에 있게 되면, 부모 안에 있게 되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효가 되었든, 자녀사랑이 되었든, 부부사랑이 되었든 모든 인간의 사랑의 관계는

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자매님! 여러분!!

가정의 회복은 주 하나님의 사랑만이 해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부모사랑이든, 자녀사랑이든, 부부사랑이든 주 하나님의 사랑이 빠진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성경에서의 집 나간 탕자는

주 하나님의 사랑으로 결국엔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100% 순종하되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육신의 부모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참부모님을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효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가장 귀한 효도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참부모님을, 나의 부모님을 즐겁게, 행복하게 하여드리는 것,

육신의 자녀가 부모에게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부모님과 함께 즐겁게

바로 영생의 길로 함께 가는 것일 겁니다.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무슨 말이겠습니까?

축복가정들 모두는 먼저 참부모님을 잘 믿고 따르라는 것일 겁니다.

그다음에 우리는 육신의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실상이 하나님이라면 부모님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물품이나 애용하던 것을 함께

소중하게 여기고 간직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사진을

먼지나는 곳에 처박아 둔다거나

발로 밟는 것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가끔 우리들의 행사장의 뒷 장면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참부모님의 존영이 그려진 안내장 한 장에도 소중한 하늘의 사랑이 묻어 있는 것입니다.

그냥 버리거나 밟아버리는 행동은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참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이 참부모님 사랑을 통해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참부모님 사랑을 통해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언제인가 신문에 이상한 광고가 났습니다.

‘나이든 어머니를 팝니다.’ 세상에 이런 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나이든 어머니를 판다고 하니, 세상 사람들은 그런 광고를 낸 자식을

손가락질하고 욕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질만 할 뿐 ‘매물’로 나온 불쌍한 어머니를 거두어들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고아로 가난하게 지냈던 한 젊은 부부가 이 광고를 보았습니다.

이 부부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살았기에, 부모가 있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던 참에 ‘나이든 어머니’를 판다는 광고를 보자마자

그 어머니를 자신들의 어머니로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부부가 광고를 보고 찾아간 집은 대궐같은 집이었습니다.

벨을 누르자 노인 한 분이 나와서 어떻게 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부부는 “우리는 고아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부모 없이 살다보니,

부모가 계신 분이 부러웠습니다.

마침 신문에 나이 드신 어머니를 판다고 하기에

그 어머니를 사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이 노인은 너무 반가워하며 이 젊은 부부에게 “내 뜻에 맞는 사람이 왔구먼.

이제 자네들은 내 자식이오.”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그 부부에게

“이 집은 당신들 것이니 이 집에 들어와서 함께 삽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보게, 내가 양자를 구한다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도 재산이 탐이 나서 몰려왔을 게야. 그러나 나이든 어머니를 판다고 하니,

자네들처럼 진심으로 효도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겠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여러분!! 효도할 마음만 가져도

그 마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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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이존형님의 댓글

박순철 시인.회장.교장님!
그거이 한번 길게 불러야되는 회장님!
좀 길게 내려 오신다고 숨이 차실 터이니
우선 한숨 돌리시고 편하게 한마디 하입시더요!
아직 소화가 덜 된것도 있고하니
언제 소회제나 한잔하시면 어떠하실지요?
편한 장소에서 좋은 시간예 좋은 말말말....
지갑은 제가 열겠습니더예!

박순철님의 댓글

나는 긴 글만 보면 주눅이 듭니다.
그런데 쓰라고 하면 제법 긴 글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존형장로님의 글은 긴 글인데도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가슴에 담고 여분이 있어서
두 손에 쥐고 있습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성호갑 회장님, 정해관 총장님, 유노숙 자매님, 이태곤 목사님!!!
그리고 조용히 다녀가신 모든 분!!
고맙습니다.

저 자신은 어딘가 늘 부족한 것 같은 삶에서
저의 부모님들을 생각해보면
세상 다른 부모와는 좀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저의 아들딸들은 저를 닮지 말고 세상에서나
뜻 속에서 큰일들을 할 수 있는 그런 아이들이었음 하는
바램으로 부모들의 마음에 편승하여 보려고 글을 올렸습니다.

이태곤님의 댓글

이형의 증언집을 읽고나서,
이형의 아버지도 훌륭하시고, 이형의 자식들도 휼륭합니다.
그런 부모와 자식을 둔 이형은 행복한 사람!

이존형님의 댓글

글을 쓰다 보니 너무 좀 길게 내려왔나요?
원래가 이런 내용은 좀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글이지만
인간사에서 절대 필요한 글일 것 같아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모두는 효의 생활을 잘 하고 계시겠지만
저에게는 세상에서 효를 드릴 부모님은 계시지 않는군요.

후회막급한 저의 삶을 돌아보니 눈물이 나와 부모님께
통회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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