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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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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

후목/소 상호

고향이 그리워 우는 작은 꽃

올곧은 소리 하지 못하고

자상한 주장 펴지 못한

순진하며 부드러운 꽃

가린 풀잎 속 감아올린 넝쿨아래

다소곳이 세수해

고이 다듬어 진 청순한 꽃

큰 소리로 울지 못 한 여린 소녀처럼

나팔을 불려하다

소리 내지 못한 숙명을 가슴에 안고

혼자 외로이 가난과 싸워

이긴, 질긴 잡초 속에

다소곶이 자리한 연민의 꽃

낭만을 모르고

풍요로움을 모르는

남편 없이 혼자 보릿고개를 넘기는 여인처럼

창백한 얼굴로 하늘을 보는

꿈이 낮은 여인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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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소상호님의 댓글

꿈이 낮은 여인의 꽃
우리 언니요
누나요
어머니같은 꽃
마음이 고와서 짙은 색 내지 못하고
조용히 꿈을 꾸며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하소연하는
우리네 산천의 꽃입니다
메꽃을 보는 순간 바로 이것이 우리네 여인의 꽃인가
몇천년을 이끌어 온
끈기의 사연이 묻어 잉태한 꽃 07-29 *

이순희님의 댓글

청순하고 가녀린 메꽃 잘 보았습니다.
엣날 생각 나게하는 글인가 생각합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건강 하십시요.

정해관님의 댓글

♥ 간밤에 불던 바람 --- 유응부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 다 기울어 지단 말가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유응부 (?-1456) ; 사육신의 한사람, 사육신은 세조에 의해 죽은 충신들임.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신지(信之)·선장(善長), 호는 벽량(碧梁).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세종과 문종의 총애를 받았다. 첨지중추원사·경원절제사를 지내고 1452년(단종 즉위) 의주목사, 1453년 평안좌도절제사 등을 역임했으며, 1455년(세조 1) 동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다. 세조 즉위 후 왕권이 강화되고 신권이 약화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세조의 불의의 찬탈에 대한 저항이라는 대의(大義)가 내세워지고 있었다. 이에 그는 전직·현직 집현전 출신인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 등과 함께 단종복위를 모의했다. 세조가 상왕(上王:단종)을 모시고 명나라 사신을 창덕궁에 초청하여 벌인 연회에서 성승(成勝)과 함께 별운검(別雲劒)을 맡게 되자 그 자리에서 세조와 측근관료들을 제거하고 상왕을 복위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세조가 연회 당일 별운검을 폐지하도록 명했으며, 왕세자도 병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그대로 거사할 것을 주장했으나 성삼문 등의 만류로 모의를 뒤로 미루게 되었다. 이때 모의에 참여했던 김질(金礩)이 이 사실을 세조에게 밀고함으로써 단종복위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그를 포함한 주모자 6명은 체포되어 형살(刑殺)되거나 자살했으며, 이에 연루된 70여 명이 화를 당했다. 세조가 국문하면서 그에게 "너는 무엇을 하려 했느냐"라고 묻자, "한 칼로 족하(足下:세조를 가리킴)를 죽이고 본 임금을 복위시키려 했다"고 대답하여 극심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 1691년(숙종 17) 12월 사육신을 국가에서 공인함으로써 복관되었으며, 1791년 2월 절의숭상의 범위를 더 넓혀 단종을 위하여 충성을 바친 여러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정할 때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재차 확인되었다. 노량진 민절서원(愍節書院), 홍주 노운서원(魯雲書院), 연산 충곡서원(忠谷書院), 영월 창절사(彰節祠), 대구 낙빈서원(洛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조항삼님의 댓글

나팔꽃은 "메꽃과의 일년생 줄기가 덩굴진 풀꽃"을 말하고,
메꽃은 "메꽃과의 다년생 줄기가 덩굴진 풀꽃"을 말합니다.

시인님께서 메꽃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멋지게 표현해 주시어
새로운 시각으로 접견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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