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그릴

서울역 그릴(grill)

후목/소상호

오후 2시 서울역 4층 그릴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하얀 쟁반에 받침종이를 깔고

꽃무늬 유리그릇에 얼음담아 밑그림 그리고

팥죽으로 덧칠을 한채로

수박 오렌지 메론 잘게 썰어

머슴밥처럼 고봉으로 올려서

다소 곧이 가져다 놓는다

얼음산 옆구리를 차 숟가락으로 파서

하얀 속살에 검붉은 팥물을 섞어

곱게 한 숟갈 베어 먹으니

텁텁한 여름 날, 답답함이

멀리 창 밖으로 날아가고

시원한 찬 물이 몸속으로 기어오는 것 같다

큰 창가너머, 느티나무 아래

노숙자 부부가 웃통을 벗고

마주 보며 웃으며 담화하는 모습

원시적 삶을 보는 것 같다

한 시대에 살면서

현대적이며 시원하고 단아한 멋과

원시적이며 끈적 끈적하며 텁텁한 모습이

위 아래에서 서로 함께한다

웃 통을 벗은 노숙자의 끈끈한 정

그 곳으로 자꾸만 눈이 간다

왜 일까?

웃 통을 벗은 노숙자의 옆에 경찰관 두명이 다가간다

아마 웃옷을 입으라 하는 것같다

그런데 자꾸만

그 곳으로 눈이 간다

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