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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을 건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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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을 건너며
                    -문용대-
다시 가을이 왔다.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 부르지만, 내게 오는 가을은 조금 다르다. 찬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길가에 낙엽이 뒹굴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쓸쓸함이 밀려온다. 해가 갈수록 그 쓸쓸함이 깊어지는 것은 내 인생도 어느덧 저무는 황혼녘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느 단체의 임원을 맡고 있다. 회원들은 결혼 생활 반세기를 넘긴 칠십 대 후반에서 팔십 대의 어르신들이다. 내 일 가운데 하나는 회원들의 경조사를 정리해 홈페이지에 올리고, 오백여 명이 모인 대화방에 소식을 전하는 일이다. 기쁜 소식도 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부고를 전하는 날이 부쩍 잦아졌다. 부고 문자를 보내고 휴대전화 화면을 끄면 손끝에 남는 서늘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열일곱 분이 세상을 떠났고, 올해는 한 해가 다 지나기도 전에 열네 분의 부고를 전했다. 지난달에는 육십 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 온 창원의 한 친구가 떠났다. 며칠 전에는 오래 전 직장 생활을 함께했던, 나보다 열 살 위인 분의 부고도 받았다. 가까이 지내던 이들이 하나둘 떠날 때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떠날 날은 언제쯤일까.’

낙엽처럼 스러져 가는 인연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언젠가 나도 부고를 전하는 일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그들을 만나겠지. 먼저 건너간 이들은 나를 보고 무어라 할까. 자신들의 마지막 소식을 전하던 나를 반갑게 맞아 줄까. 강 건너편에 먼저 가 있는 이들을 떠올리면 그리움은 아득해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하다.

며칠 전, 어느 사회단체 모임에서 발표자인 한 어머니의 고백을 들었다. 스물일곱 살 된 딸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담담하게 시작된 고백에 좌중은 이내 조용해졌다. 딸의 병은 가정을 흔들었고, 부부 사이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그가 들었다던, “차라리 자식과 함께 죽고 싶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삶의 벼랑 끝에 서 본 사람만이 안다고 했다.

그 절망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뜻밖에도 시 한 편이었다. 힘들 때마다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를 떠올리고, 푸시킨의 「삶」을 읊조리며 어두운 밤을 견뎠다고 했다. 시를 이야기하던 어머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가 꿈꾼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었다.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름 없는 여인으로 살아가는 것, 작은 초가집에 들장미 울타리를 두르고 사랑하는 이들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 그저 그런 소박한 행복이었다. 얼마나 삶이 고달팠으면 기차가 지나가는 외딴 산골의 하루를 여왕보다 행복하다 했을까.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아는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장애가 있는 마흔 살 딸을 둔 지인이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저것, 어디 가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그 말을 비정하다 할 것이다. 나 역시 그 말이 얼마나 모질게 들리는지 안다. 그러나 그 말의 이면에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제 몸을 깎아 가며 자식을 돌보는 날들이 쌓이고,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절망이 끝내 말이 되어 터져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자식을 향한 미움이라기보다 더는 버틸 힘이 없다는 부모의 피맺힌 절규였을지도 모른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어머니의 이야기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떠난 이들의 부고를 전하며 느끼는 허무함과 아픈 자식을 품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고통은 서로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놓여 있었다.

왜 어떤 이에게는 사랑해야 할 자식이 가장 큰 슬픔이 되는가. 왜 우리는 평생을 함께한 이들과의 이별을 이토록 아프게 견뎌야 하는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 앞에서 나는 그 어머니가 시 한 구절에 기대어 긴 밤을 견뎠다는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은 언제나 거창한 희망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의 말일 수도 있고, 오래전 외워 둔 시 한 구절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것들에 기대어 하루를 건너고, 또 하루를 살아 낸다.

나 역시 떠나는 이들의 이름을 적으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다. 하지만 부고를 전하는 일이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우리 곁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들의 마지막 소식을 전하는 일은 슬프지만, 결코 허무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먼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이자,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기억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가을바람이 다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천상병 시인은 삶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 노래했다. 그 말을 떠올리면 삶의 끝도 두려움만으로 바라볼 일은 아닌 듯하다. 긴 소풍이 저물어 가듯, 언젠가 나도 이 땅에서의 일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겠지.

그때 먼저 간 친구들과 선배들, 그리고 자식을 위해 눈물과 진액을 쏟으며 긴 세월을 견디다가 마침내 안식을 찾은 어머니들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땅에서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참 잘 견뎌 내셨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으며,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고 말해 줄 것만 같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내게 남은 가을과 인연들을 조금 더 사랑하고 싶다. 언젠가 요단강 너머에서 우리 모두 이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름도 지위도 근심도 없이 평화로운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날이 오기까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조금 더 따뜻하게 잡아 주고 싶다. 우리가 함께 나눈 마음과 서로에게 건넨 작은 위로가 이승의 시간을 넘어 오래도록 빛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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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개

김태순님의 댓글

누구나 마음속에 많은 글들을 담고 삽니다. 하루를 살아도 태산처럼 큰 사연이 될수도, 하지만일평생을 살면서도 그 글의 소재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도 하죠 누구의 인생은 책으로 엮으면 몇 권을 써도 부족 하다 말할수 있으나 그 또한 누구나 존재자채가 역사이고 사연일것입니다 다만 표출을 얼마나 하느냐 않하느냐 이겠죠. 문용대 기획부장님, 총장님, 장로님, 명함만큼 바쁜일상 이실텐데 저는 오늘 작가님이라 불러드리겠습니다 진솔한 글로 본인은 물론 타인들의 소중한 삶을 글로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어필해 주시니 가슴깊이 파노라마같은 감동이 출렁입니다 값진 수상 축하드리며 더욱 많은 사연 기대합니다 소화 고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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