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은평교회장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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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평교회 5월 2일 설교말씀)
제목 : 잃어버린 자리
예수님 탄생시기의 정황
마태복음 1장 2절~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2000년전 만왕의 왕 메시아로 이 땅에 태어나셨을 때 그 분을 맞이한 것은 아브라함 이후 하늘이 준비 해오신 섭리의 중심에 섰던 유대민족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430년 전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신 이후 많은 준비를 해온 제사장, 교법사, 율법사들도 아니었습니다.
예수 탄생을 안자들은 바로 별을 보고 점을 치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으며,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그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편 이방인들 간에 있어서는, 이와 거의 동시대에 인도의 석가모니(565-485 B.C)로 하여금 인도교를 발전시켜 불도의 새로운 터전을 개척케 하셨고, 희랍에서는 소크라테스(470~399 B.C)로 하여금
헬라문화시대를 개척케 하셨으며, 또 동양에서는 공자(552-479 B.C)로 하여금 유교를 통하여 새로운 정신문화의 세계를 개척케 하셨습니다.
그러한 변방의 섭리도 있었지만 역시 메시아 탄생을 맞이한 자는 동방박사들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한가요? 세계적인 대형교회로 4위안에 든 교회가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기독교 인구가 4분의 1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통치권에 있는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비롯한 교회의 신앙의 열기는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새로 오신다는 재림주님을 제대로 맞이하는 교회는 그 속에 하나도 없습니다.
2000년 전에 메시아 강림 때처럼 회칠한 무덤으로 전락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참부모님을 메시아 재림주, 만왕의 왕으로 모시며 사는 우리들은 과연 그러한 불행한 과거와 비교 해 볼 때 어느 것 하나 부끄러움 없는 자들인가? 하늘은 지금도 묻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게 동방 박사같은 이들이 진정으로 재림주님께 경배를 드리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은평교회 안에서는 어떠한 가요? 이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선령들께서 오고 계시는데 제대로 맞이하는 신앙적 자세는 되었는가요?
제가 자주 말씀드립니다만, 새로운 전도대상자가 왔을 때 그 분을 오래된 식구님들이 황제같이 맞이하고 모시지 않는 한 교회의 발전은 되지 않습니다.
우리 가정 안에서는 또 어떠한가요? 아버지, 어머니, 남편, 부인, 자녀 등 서로 자기 가정에 중심자리만 지키려고 내 세운다면 그 가정 역시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섭리로 볼 때나 교회에서, 가정에서 결국은 내 자신의 문제 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어떠한 생각과 심정적 자세로 희생 봉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느냐가 문제 일 것입니다. 지금은 과도기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안의 문제, 미디어에서 또 우리 주위에서 이런 말, 저런 말 들이 오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부화뇌동해선 안 됩니다.
그저 묵묵히 기도하며 지금 하늘이 무엇이 필요한 지 따르며 실천해 나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급하다 할 것입니다.
말씀 훈독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길을 가시면서 서러운 심정을 느끼셨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만은 그런 예수님을 위로하고 염려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신한 예수님의
천적인 내적 심정을 체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녀에게 축복을 내리셨고, 환희의 은사로 그녀를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2.212, 1957.05.26)
돌아가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 사람은 비록 인간들이 보기에는 미약한 존재였지만 그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이런 간곡한 마리아 앞에 예수님은 부활의 몸으로써 나타났으니 이는 끝 날에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갈 길을 보여준 표상인 것입니다.
생사를 초월하고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따르던 그녀의 행로는 끝 날의 성도들이 걸어야 할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지금도 이 땅 위에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심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을진대
그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에 어린 눈물이 감돌 것이요, 하늘 앞에 무한히 빚진 자신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4.258-259, 1958.06.29)
아버님 말씀과 성서의 기록으로 보아 결국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처럼 끝까지 예수님을 모셨던 이는 막달라 마리아 뿐 이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직접 받으며 가까이 했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심각하게 경종을 울려주는 섭리적인 교훈인 것입니다. 누가 끝까지 남을 것인가? 누가 끝까지 참부모님을 모실 것인가? 누가 끝까지 교회를, 가정을 돌볼 것인가?
우리에게 스스로 물어오는 양심의 소리입니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회개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충전의 때를 갖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이제껏 살아온 것이 전부요 중심인 것으로 착각하여
눈이 멀어 있는 것을 모르거나 귀가 멀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그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들, 즉 아버님 말씀처럼 청맹과니(233-89)가
돼 가지고 큰 소리 치거나 자기 환상에 빠진지 모르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아닌지 생각 해 봐야 합니다.
같이 가 처녀
말씀을 하면서 웃기는 해학에도 언중유골(찌르기)적인 요소가 있고, 남을 찌르는 풍자에도 웃기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학이든 풍자든 단순한 우스개로 그친다면 말씀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잡소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 속에 숨어있는 내용을 이해 못하고 겉 소리만 기억 한다면 그것도 문제 될 것입니다.
잘 새겨들으시길 바라면서 말문을 열어보겠습니다.
어느 할머니가 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내가 아직도 처녀처럼 보이나. 내 뒷모습이 그렇게 예쁜가?’
누군지 보고 싶었지만 자기의 진짜모습이 탄로 나서
남자가 실망할까 봐, 자기의 본색이 들통날까봐, 뒤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가 싱글벙글하자 손녀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아까 집에 오는데 어떤 남자가 나한테 처녀라고 그러더라.”
손녀는 믿기지 않는 듯
“잘못 들은 건 아니고요?”
할머니가 정색을 하며
“아니다. 내가 분명히 들었다. 분명히 처녀라고 했어.”
“그게 누군데요?”
“그건 모르지. 하여튼 남자들은 예쁜 건 알아가지고….”
“그럼 내일 보청기 끼고 다시 들어보세요.”
이튿날 할머니가 보청기를 끼고 집을 나섰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봐도
그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일 다시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오는데
뒤에서 어제 들었던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손녀가 말 한데로 보청기를 끼고 집중하며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갈치가 천원∼ 갈치가 천원∼” 하는 갈치 장사 소리였습니다.
우리들이 때로는 자기 착각 속에서 사는 때가 많습니다.
자기가 걸어온 길이 중심선에 서야 되고, 자기의 주관적인 신앙이 당연히 그 가운데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가정, 연륜, 내가 누구인데...내가 이러한 길을 걸어 온 자인데, 목회자, 사모, 장로, 권사, 집사, 부서장...등등
우리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착각 속에서 살면 자기만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나 전체까지 망쳐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을 바르게 알게 하기 위해 금번 세계지도자 120일 참부모님 주관 특별교육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적 훈독강사로 키우시겠다는 참부모님의 말씀은 제 생각으론
목회자가 우선 먼저 변하고, 그리고 중심식구들이 변하고 모든 식구들이 변해야 세상이 변하겠지요. 그래서 목회자를 먼저 부르신 것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손녀 딸 같은 조언자가 필요합니다.
그 손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듣고 저러시는지, 그러나 말 대신에 스스로 바르게 듣고 깨닫게 하기 위해 보청기를 권했던 것입니다. 그 손녀는 우리들의 양심이며, 우리들의 하나님입니다.
말씀 훈독 2
아담이 믿음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렸으니, 믿음의 기대를 찾고 실체기대를 확보한 다음에야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 먼저는 믿음을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실체를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세 가지입니다. 이것을 찾자는 것입니다. (65-310)
즉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본문 말씀처럼 아담뿐만이 아니라 자기를 앞세우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모르고 착각 속에서 이제껏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청맹과니가 될 수 없습니다. 새롭게 안경을 껴서 참된 패러다임의 세계로, 새롭게 보청기를 달고 진정한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한 번 쯤 되돌아보고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알았더라면 이 할머니처럼 착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금번 목회자를 부르시어 새벽 2시경부터 체조, 명상, 210배 경배, 하루종일 훈독 등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하늘이 주신 말씀을 통하여 재충전하라는
하늘의 은사로 알고 교육을 받겠습니다. 식구님들께 밤 시간을 통하여 기도와 정성을 들여 주시는데 대하여 감사하고 이런 동기로 우리 은평교회가 진정한 화합과 발전이 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어린이날과 ‘수천석두(水穿石頭, 물이 돌을 뚫는다)'의 신앙과 실천
오늘 아침 9시에 어린이날이 내일모래글피 입니다만, 오늘 미리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잔치 겸 예배를 보았습니다. 어린이날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습니까? 저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뜻이 있다고 봅니다.
첫 째는 참부모님의 탄생 시점으로 보아 섭리적인 요청에 의해서 어린이 날이 탄생된 것입니다. 참아버님께서 탄생되시는 1920년대부터 어린이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이 자리 잡고 있어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정서아래 아이들이 어른 들 앞에선 무조건 따라야 하며 매를 맞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며
또한 일제 점령기에서 어린이들의 내면과 외면의 모두 중요성보단 튼튼한 황군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밖에 없던 차에 독실한 천도교인이었던 방정환 선생을 통하여 어린이 운동의 중요성 즉 2000년전
예수님 탄생 시에 헤롯왕이 아기를 죽이려 했던 것을 이제는 오신 재림주님을 잘 보호 해 드리기 위한 섭리의 요청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방정한 선생의 수천석두(水穿石頭)의 신상의 결실입니다.
인내천[人乃天]사상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과 인간의 완전성이 어린이에게 있다는 깊은 뜻을 안 그는 어린이들을 모아 동화회 즉 훈독회를 시작으로 어린이 운동이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600만명의 어린이 들 가운데 530만 명이 학교를 못가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을 때 이는 천도교당에 모이게 한 어린이들 앞에서 열심히 사랑의 선물이란 책으로 엮은 책
번안집(안데르센동화, 페로동화, 오스카와일드 동화 등)을 동화회(훈독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매 번 2000명이 모였다고 하니 그 때의 인기가 대단했던 것입니다.
그 후 어린이날이 새싹이 돋아나는 5월 1일로 잡았다가 노동절과 겹친다고 해서 5월 첫 번 째 일요일로 잡았다가 평양에서 그 동화회가 불온하다고 해서 폐지되었다가 해방이 되면서
'해방의 기쁨을 어린이에게로'라는 슬로건으로 1946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인 5월 5일이 고정적으로 어린이 날로 확정되어 기념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한 방울의 물방울이 바위 돌을 뚫듯이 깊은 신앙과 의욕을 가지고 실천하게 되면 국민적 운동으로 전개 되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욕(意慾)이 있어도 되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사거든, 하물며 당초부터 의욕도 없으면 가능 하겠습니까? 가능, 불가능의 수판만 따져 가지고야 어디서 용기가 생기겠습니까? 의욕과 신념과 용기를 가져야겠습니다.
사람들을 기다린다 생각지 마시고 우리가 의욕을 가지고 찾으러 나서야 할 때입니다. 희망으로 맞아야 할 신춘(新春)에의 희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렵지만, 또 얼마나 보람 있는 일입니까?
전도, 새로운 사람 찾기..우리의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길의 지름길이 바로 이 길인 것입니다.
우리 식구님들의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으시는 동기가 부여되는 5월이 돼 시길 기원 드리며 식구님과 가정에 5월 한 달 내내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은사가 충만 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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