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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교회 11월 15일설교 원문(필생의 과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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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생(畢生)의 과업(課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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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독 말씀 : 이것을 멈추기 위해서는 병이 나게 한 근본을 파헤쳐야 됩니다. 그러려면 아담 해와로 돌아가야 됩니다. 거짓부모가 생겼으니 참부모의 자리를 찾아가야 됩니다. 잃어버렸으니 찾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싸움 가운데 있을 수 없으니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찾으려면 몸 마음을 중심삼고 통일해야 됩니다. 이것이 필생의 과업입니다. 영원을 두고 이 놀음을 저 나라에 가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253 - P.295 ] 필생의 과업 (1994.01.30)

WHO(세계보건기구)의 재앙(災殃) 경고(警告)와 내적 모순

WHO 즉 세계보건기구는 2010년을 바라보면서 대 재앙을 우려 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문제? 아닙니다. 물론 환경문제 대단히 심각합니다만, 그것은 아닙니다. 요즈음 심각한 신종풀루 문제? 그것도 아닙니다. 지난주 말씀 중 자살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만, WHO는 2010년에 인류를 괴롭힐 가장 큰 재앙으로 우울증을 꼽았습니다. WHO는 강도를 높여 2020년이 되면 우울증이 사망원인 1위로 암, 에이즈 사망자보다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내적인 갈등은 원리 총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동일한 개체 속에서 각기 상반된 목적을 앞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인간의 모순성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싸움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은 인류역사성에 대하여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포기하지 않은 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모순(싸움)된 자신의 시인과 수용

원리강론 총서론에서 소개된 사도 바울의 신앙적 고백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롬7장 22~24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합니다. 즉 타락의 후예임을 시인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구님들께서 기도를 하실 때 어느 목표 또는 기도의 제목을 놓고 기도를 정기적으로 할 때 본의 아니게 엉뚱한 잡생각이 나서 거기에 끌려가다보면 본래의 기도제목이나 내용을 한참동안 잃어버린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는 억지로 거부하려 하거나 괴로워하면 오히려 갈등의 연속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한 번 와바라 그 생각 좋다 내가 받아들여주마 또 다른 생각 더 없냐?’ 하는 식으로 수용하다보면 본래의 기도의 제목이 중심에 서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분명하게 정립되어집니다. 이렇듯 ‘내가 타락의 후손이기에 내속에 있는 타락성본성이 있기 때문에 당연하지’ 하면서 수용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수용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타락론 강의를 통하여 죄의 주체와 죄가 있게 된 근본 이유, 그리고 타락의 결과 등 우리의 창조 본연의 모습이 아닌 타락의 모습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시인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 마음의 싸움을 해결하는 방법 중의 제일 중요한 것은 신앙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신앙을 갖지 않으면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알아야 되니까요. 아버님말씀에도 무지에는 완성이 없다고 하셨지요? 자신의 갈등 속에서 오는 우울증 해결방법의 근본은 먼저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고백 했듯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아버님의 말씀을 훈독하겠습니다. 앞에서 훈독한 내용의 연속입니다.

“양심을 중심삼고 이것을 어떻게 때려잡느냐? 암만 기도해도 지금까지 이 전쟁을 못 멈췄습니다. 인간 시작으로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 가지고 우리 개인의 몸 마음이 싸우고 있는 전쟁은 계속된 것입니다. 세계 전쟁은 휴전도 있었고, 끝나는 일이 있지만 내 몸 마음의 싸움은 연속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누가 멈추게 할 거예요?”

치유에 대하여

지금 모든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서열의 위쪽에 장식하는 것이 ‘치유’에 관한 것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서점가의 한 쪽에 밀려 먼지가 쌓이거나 외면 당해오던 치유에 관한 책들이 지금은 가장 많이 읽혀지고 베스트셀러로 100만권이상씩 팔리는 책들도 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내적 갈등에 대한 해결점을 찾고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해인 수녀와 '무소유'의 법정 스님, 인간의 마음이 문제니, 마음이 피곤치 않게 살라(장자에게 길을 묻다) 등 종교인들은 물론이요, 정신과의사, 전문상담가 등에 의해 마음산책, 미술치유, 음악치유, 명상치유, 놀이치유 등 지금 우리들의 마음을 온통 치유에 대하여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가르침만을 주는 스승이 아닌 격려하고 끌어주고 때에 따라 마음을 치유해주는 가이드. 그 가이드는 친구일 수도, 의사일 수도, 학교 교사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은 가정일 것입니다. 치유가 단순히 서점가의 단행본 시장만의 키워드는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만의 고민이 아닌 우리들 전체, 우리 가족 모두의 고민이기 때문 일 것입니다.

3년 전의 베스트셀러 키워드는 '배려'였습니다. '배려' '어린이를 위한 배려' 여성을 위한 배려,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노동자나 농민 등 상부구조에 비해 하부구조레벨에 대한 배려, 마치 당시 정책의 입안자들을 옹호라도 하는 냥,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고 다들 잘 팔렸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위로'라는 키워드가 또 인기가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IMF에 사회 전체가 차가워진 환경을 위로라도 하듯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책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이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 같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다룬 내용이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치유는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대중과 가까워지기에는 먼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치유가 단연 으뜸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 즉 마음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이 약하고, 피곤하지 않게 살 수 있는 길을 묻고 싶어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해답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는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감사의 신앙

에디슨의 평생에 연구실적으로 삼았던 전기발명의 성공을 위해 노력에 몰두하던 에디슨에게 일대의 화재사건이 생겼습니다.

1914년 12월 에디슨이 예순일곱살 때 그의 실험실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 하룻밤의 화재는 에디슨의 평생의 연구를 다 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손해액은 200만달러가 넘었지만 보상금은 겨우 24만 달러정도 였습니다.

화재가 있었던 다음날 아침 에디슨은 폐허가 된 실험실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습니다. “재난도 가치가 있지. 내 모든 실수가 다 타버렸으니까. 하나님, 제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화재가 나고 3주후 에디슨은 최초의 축음기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에디슨은 자신의 재난을 수용을 했고 그것을 통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하늘을 중심삼고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내용인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말했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라고 했듯이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카전서 5장 18절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필생의 과업인 몸, 마음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갑자기 다치거나 넘어지면 그냥 재수 없어 하며 스스로 딱하게 여기지만,

아버님 말씀가운데 '사람이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다치거나 아프다고 해서 재수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늘이 이것을 조건으로 조상이나 자기 이제껏 지은 죄를 이렇게 탕감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늘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 하늘도 놀라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님 말씀집 20권 338쪽에 보면 감사하는 신앙생활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라 하셨습니다.

성공의 밑바탕 ‘긍정’ 의 힘

우리교회 후텐마 사이버 선교사께서 열심히 우리들의 ‘카페’에 올린 글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평소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뛰어난 어느 회사의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임원들이 꺼리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겨 눈총을 사기도 했지만,

그런 이들마다 곧 뛰어난 실적을 보여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곤 했습니다.

어느날 유명한 일간지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하면 인재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은행장을 지내던 시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는 고객과 상담을 하던 중 계약 내용에 대해 확인할 일이 생기면 창구 직원을 인터폰으로 부르곤 했습니다. 이 때 그들의 대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손님이 있어서 지금은 못 들어가겠는데요.”

“손님이 계시니 이 일이 끝나면 곧 들어가겠습니다.”

언뜻 들으면 비슷해 보이지만 이 대답을 통해, 사장은 그 직원이 부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인지,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후 인재를 채용할 때면 긍정적인가를 첫째 조건으로 삼았고,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이 틀린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란 세상을 핑크빛 환상으로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다는 의지와 마음가짐, 열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밑바탕입니다.

성공의 제 1원칙으로 긍정을 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월간, ‘행복한 동행’ 중에서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그 아픈 신체 자신의 부위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문지르거나 지압을 하면 상대방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영적인 파장에 의한 사랑의 힘이 전달된다는 말씀을 하신것입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가족이 아프거나 교회 식구가 아플 때 직접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상대방의 아픈 것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기도해서 낳은 것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렇게 하고 나면 나는 그 상대방의 그 아픈 부위에 통증을 느꼈는데, 지금은 아버님께서 창안하신 ‘Happy Health’ 건강기계로 상대방의 아픈 부위를 나의 부위에 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문지르곤 합니다. 그러면 가족이나 식구들의 아픈 것이 나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것은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 첫째 조건일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자업자득이요, 자승자박이니까요. 우을증 두려워 할 것 업습니다. 긍정의 힘을 확신하고 행동하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대기업 사장의 예

목포에서 유지의 아들로 태어났고.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던 그는

열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급기야 기울었습니다.

열세 살 때 어머니와 상경한 아이는 학교에선 친구들 머리를 깍아 주며 용돈을 벌었고

방학 때는 청계천 앰프 공장에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식모살이를 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만 집에 왔으며,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그의 일이었습니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장에서 버려진 배춧잎을 가져다 먹는 일은 다반사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살림살이를 이끌어갔고, 사업에 망하기도 했고, 세상이 실어진 때도 있었습니다. 결국 스스로 자살의 길 까지 택했다가 스물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는, 죽을 힘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때 자살을 결심했던 그는 1500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레전자’의 정모 사장입니다.

예상치 못한 고난과 시련을 대처하는 모습에서 사람됨의 깊이와 인격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긍정의 힘이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힘은 긍정의 힘 곧 희망의 힘입니다.

머릿속에 희망을 좀먹는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긍정의 힘입니다.

원리에서 밝히듯이 행복은 욕망을 없앰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삶의 내용과 본질을 발견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삶에 목적이 있다면 인간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목적이 없고, 의미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참을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기도 합니다.

강 장로님의 긍정(웃음)의 치유

강장로님 작년에 말기 위암을 선고받고, 항암치료를 받아오시느라 설명할 수 없는 고생이 참으로 많으신 분이십니다. 제가 처음 뵈올 때는 얼굴의 모습이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웃음의 치료를 통하여 상당한 발전된 모습을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표정도 밝아지고, 언행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긍정의 힘입니다. 웃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프로그램도 웃음 있는 코너를 즐겨보시고 거울보고 자신의 모습의 적극적인 면을 보며 스스로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거울은 결코 먼저 웃지 않는다’는 진리를 터득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인 권사님의 정성이 함께 어우러져 더욱 좋아지고 있습니다.

웃음의 치유, 긍정의 힘이라 할 것입니다.

아버님의 말씀 훈독

앞에서 훈독해 드린 내용에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인간은 제2의 하나님이요,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몸 마음이 하나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다 읽게 되어 있어요. 공명체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주파로 공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반발적인 입장에서 주파가 달라졌기 때문에 공명이 안 된다구요. 몸 마음이 싸우는 데는 하나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게 왜 싸우느냐, 기원이 왜 이러느냐 하면 타락 때문입니다. 이것을 없애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중요성

경제계에서 경영자로서 성공하기 위한 최대의 요소는 ‘인간성’이라고 합니다. 우리들 사회에서 오가는 말 가운데 ‘안면이 재산’이란 말이 있지요? 그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화(和)를 중요시 여기는 어느 지도자님의 한 예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때를 놓칠지라도 화를 깨지 말라’ 즉 인간관계를 중시 여기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경쟁사회에서 승리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성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미국을 이끌어가는 지도적 입장에 있는 40개 기업체를 연구 조사하여 얻은 결과입니다.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네이션. 비즈니스” 에 의하면 기업의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풍부한 유연성, 다양한 교육과 경험,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인간성이 결정하는데 인간성의 갖가지 요소 중 사람을 끄는 것 중의 하나가 인격적 매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너무 기계적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간단한 계산도 손계산기가 없으면 못합니다. 기계나 컴퓨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이 늘어갑니다. E세대 즉 전자세대, I세대 즉 인터넷 세대, N세대 즉 네트워크 세대라 칭하며 2004년 우리나라에 1000만명이 사이버 가족이 성행하는 싸이월드 멤버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이버속에서 자기 친 가족에게 만족하지 않고 아버지를 구합니다. ‘아빠가 되어 주세염’ ‘오빠가 되어주세용’하는 식의, 사이버 가족이 성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의 성별, 나이 등 거의 무분별하게 속인다는 것이지요, 보도에도 나왔습니다만, 여자라고 하며 사이버 교제를 하는 여자 중 60%이상이 남자 였다고 하지않습니까? 심각한 상황입니다. 진정한 가족의 대화가 꼭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들의 자녀와 가족의 인격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 인격의 매력 중 하나가 감사하는 마음이며 긍정적인 사고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뜻을 중심삼고 더욱 그렇습니다.

평균기대수명의 연장

2010년 한국인 기대수명이 평균 79세가 넘는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101개국 평균은 67.6세이고, 미국이나 핀란드 같은 선진국과 같은 레밸인 세계 22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들의 기대수명이 결코 짧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길어지는 우리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요인은 투쟁이 아닌 감사와 긍정의 힘입니다. 이제 우리는 ‘필생의 과업’이 몸, 마음 투쟁하는 것을 하나로 만드는 것을 넘어 이제는 화합하며 감사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 평생 동안 이루어야 할 과업임을 새겨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제자들의 역사

제자들의 이적기사의 예, 평생의 소원을 푼 앉은뱅이의 예에 대한 사례가 나옵니다.(사도행전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자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상속시켜주신 것이 자기들에게 나타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이를 행한 예라 할 것입니다. 그는 결국 기독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우리들에게 상속시켜주신 것, 즉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기와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필생의 과업을 성취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습니다. 실천만이 남았습니다.

결론 : 이와같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바탕으로 하여 승리하신 삶, 즉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는 식구님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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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이재홍님의 댓글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주일 낮 원리강의를 할 때와 특별 초대강사를 모실 때를 제외하고 계속 올리겠습니다만 진정한 은혜는 교회안에서 함께 말씀듣고, 먹고 웃고 대화하는 가운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여기서 목사님 설교말씀 들어면 주일날 교회 안나가도 은혜가 넘치겠습니다.
목사님 싱싱하게 살아서 숨쉬는 말씀 은혜많이 받고 갑니다.
그 주간 설교로 계속 올려 주시는 거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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