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메시아관 (우상화는 자기 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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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메시아관( 우상화는 부끄럽고 비굴한 자기 비하 )
친 부모가 아무리 학식이 있고 위대한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친자식이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결코 주눅 들거나 비굴해 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간의 본질적 연결고리는 사랑이고 혈육의 정이기 때문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인류의 영존하신 참부모이시다. 우리들은 비록 타락으로 인해 지고 지선과는 까맣게 담을 쌓고 비참한 생을 살아왔던 가련한 인생이라 하더라도 지극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정성에
의해 이땅위에 재림 메시아 참부모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 배후에 숨겨진 한을 볼 수 있었고 모든 사물의 존재성과 관계성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이 육신의 부모 형제를 두신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 오셨고 희,노,애,락의 감정과 육신의 한계를 지니셨다. 그래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교감이 가능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세상이 외면하는 가운데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온갖 고초를 감당하시고 승리하시어 천비를 밝히신 인류의 구세주요 참부모로 등장하셨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그야말로 하늘의 영광이요 이 땅 위의 광명이며 소망의 결실인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생,노,병,사의 한계 뿐아니라 전쟁과 가아 범죄와 자연 재해 등등으로 부터 삶의 질을 높이고 가치와 보람 ㅡ 즉 행복을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연속되었고 이는 비단 기독교인 뿐만아니라
여타 종교인들과 모든 인류의 공통된 메시아사상으로 연결 되어져왔던 것이다.
문제는 보수적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구세주로 오셨던 메시아 예수님을 하나님 자신으로 이해하고 그 결과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건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건 예수님께는 결코 실패와 실수는 인정할 수 없다고
강변하고 무조건적으로 완전, 완벽, 무흠결, 무오설로 일관하며 그 문제에 관한한 한치의 양보나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원리적 관점에서 볼 때 분명 이것은 고질이다. 예사 고질병이 아니다. 재림 메시아의 근본 사상이 발 붙일 곳이 없는 극단적 죄악이기 때문이다.
만약 끝까지 고집한다면 하늘은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시려던 꿈을 접으실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통일가를 중심삼은 새로운 개척의길, 고난의 길을 걸으시는 뼈아픈 현실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위에서 언급한 사실 못지 않게 더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나만의 솔직한 신앙적 고백인지 모르지만, 준비 덜된 우리같은 무지렁이를 불러 주신 은사에 감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심히 불안한 우려감이 서서히 싻트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참부모님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있어서 어느샌가 우리 식구들 사이에도 상당한 비중으로 기독교인들의 예수님 신격화를 답습하려는 이상한 풍토가 서서히 조성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발 더 나아가 본체론 수련회 이후 일부 목회자님들은 이것을 은근히 부추키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충성심 경쟁이라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나 자기 겸양도 지나치면 자기 비하가 될 뿐이지
결코 심정적이라거나 바람직한 신앙적 자세라고 말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서 통일가의 평식구를 우습게 본다거나 우민화하려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뿐아니라 그 모든 책임과 화살이 결국 어디로 되돌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틈엔가 모든 면에서 아버님을 무흠결자이시며 완전, 완벽의 무오자이시며 우리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로 한껏 떠 받들어 놓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아직도 현실적으로 속세와의
연결고리 가운데서 살고 있는 우리 식구들과는 심정적으로 격리된 외딴 궁전에 격리되신 것 같아 심히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자신의 개인적인 메시아관이나 감정이야 여하튼 원리적 사실이 그렇다면야 감히 누가 무어라 말할 수 있으랴만, 원리적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오히려 과잉된 충성을 빙자한 기만과 불충인
것이다.
어지간한 중심 식구라면, 완성한 아담은 무형의 하나님의 실체로서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실체 성전이며 천주(유, 무형 두 세계)의 총합 실체상으로서, 만유의 주관자로서 영원한 인류의 부모가 되고 하나님의 창조 이상의 완성이어야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참 부모님은 복귀된 완성한 아담 해와의 위치에 와 계신다는 것도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성한 아담이 하나님 자신일 수 없듯이 참부모님이 곧 창조주 하나님일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식구라면, 축복 가정된 참자녀라면 예외없이 이미 90 성상을 넘기신 연로하신 참아버님의 안위를 염려하고 기도한다. 이 말은 곧 세월(시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는 육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여타
기억력을 포함하여 걸음걸이며 모든 거동이 예전과 같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는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우리 중생들(?)과의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부자지의 인연이며 본연의 심정적 관계이다.
오래된 식구들은 이미 노출된 참부모님의 행적을 잘 알고 있다. 억지 미화시킬 필요도 없고 그런다고해서 안될 것이 되거나 될 것이 안되는 법도 아니다.
나는 종종 공,사석에서의 참아버님의 부담스러운 감정 표출이나, 또는 기억력의 약화(가끔 이름을 아예 기억 못하시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르시는 경우 등등... ), 거동하심의 불안정감 등을 이유로 어떤 분들은
참부모, 즉 재림 메시아의 존재성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는 경우를 가끔 목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한계성이 결코 재림 메시야 되심과 참부모 되심의 정체성에 어떠한 결격 요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원리적 관점이다.
이와 정 반대로 참 부모님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무흠결, 완전, 완벽의 무오설을 여과 없이 강변하는 분들을 보면, 같은 신앙의 형제로서 존경심을 가지는게 아니라 수준을 측량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육신의 한계를 지니신 인간의 몸을 쓰고 오신 다음에야, 메시아 되심과 참부모 되시는 요체는 인간적 작은 허물이 있다고 해서 제약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역사(복귀섭리)의 방향과 대안 제시 뿐만아니라 이를 실체적을 이루어가는 대역사(大役事)를 누가 책임지고 있느냐에 따라 명확한 해답과 요체가 있는 것이다.
본연의 심정적 부자지 관계의 인연을 중심한 자기 발견의 자성을 상실한체 야릇한 신비주의적 맹신으로 흘러가는 것은 절대신앙도 절대사랑도 절대복종도 아닌 것이다.
천력 시대에, 천기를 쓰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참부모님을 대하는 의식의 수준도 높이고 자아의식도 동시에 찾아가야되는 것이다. 형제자매님의 질책을 겸허히 기다리면서.............
2010년 10월31일 (천기원년 9월24일) 일요일 새벽에
둔아 김동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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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순님의 댓글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분명 합니다.
잘못된 창조의 목적을 復歸 (복귀) 하시려는 섭리 말 입니다.
그곳을 참부모님께서는 천일국 이라 명명 하셨 습니다.
천일국은 종교의 세계가 아니라 종교가 필요 없는 그런 세상 말 입니다.
그러므로 천일국 완성은 종교의 힘 만 으로는 절대로 이룰수 없다.
천지인 참부모님은 우리통일교인 들 만의 참부모님이 아니라,
만인의 참부모님이신 것 이다.
말씀을 제도로 만들고 실천 궁행 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만든 방법으로 는 ------
네이버 까페 "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에 오셔서 같이 론의 해보심이 어떨지 ------
성범모님의 댓글
박순철님의 댓글
볼 수 있습니다. 옛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또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공손한 것은 오히려 예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참부모님께 도에 넘치게 극찬을 하는 것은 당신께서도 불편해하실
것이라고 봅니다. 즉, 우상화로 비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참부모님께 누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만 발표하시기 전에 불초 아우에게 보내셔서 이런저런 정리를 한 후 올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 문장이 한 단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읽기가 어렵고
주제파악에 시각적으로 혼란을 준다고 보아서 한 말씀드렸습니다.
우종대님의 댓글
많은 번뇌와 고뇌의 결과 끝에 이 글을 쓰신 것 같습니다.
메시아요 재림주로 오신 참부모님을 모시고 신앙하는 우리들이
혹여 메시아 참부모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사고로 신앙의 우를 범하는 모습을
심히 염려하시는 우려의 마음으로부터 따가운 지적과 좋은 지침을 주신
왕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도 메시아, 참부모님을 신격화시켜서 무조건적으로 무흠결자이시며,
완전, 완벽의 무오자로 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부모님을 그렇게 신성한 존재로 받들고 모시는 것이
잘못된 신앙은 아닌것 같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하나님의 실체를 갖고 계시는 입장이시니깐요.
하지만, 무형의 하나님과 같은 신격화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부모님께서는 육체적인 제약은 어쩔 수 없이 받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착각속에서 원리의 근본 뜻을 오해하거나 망각하여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신앙의 우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과잉된 충성의 길 앞에서 우리는 잠시 원리의 눈이 멀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왕회장님께서 지적해 주시니 감사를 드리며 깊이 공감합니다.
메시아 참부모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뜻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원리의 근본적인 근간이 되는 내용으로
우리들의 신앙의 지침이 됨을 새롭게 인식하고,
참부모님앞에 절대 충효의 도리와 사명을 다하는 자녀의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왕회장님의 지적과 지침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말하자면 기성교회의 신도들 처럼 '오로지 찬양하고 최고의 언사로 드높이는 일'이야말로 그 사람의 신심의 척도가 된다는 '절대신앙관'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 됩니다.
그런점에서 '무조건의 맹신'은 우리들과 우리들이 믿고 존경하는 재림주. 메시아. 평화의 왕에 대한 가치의 훼손 일 수도 있음을 경계하는 '용기있는 의견의 개진'임을 느끼게 하는 글이라 생각 합니다.
평소, "우리들이 밤낮으로 외우고 다짐하는 가정맹세의 '천일국 주인 우리 가정은...'에서 표현된 바와 같이 우리들이 천일국의 '주인'이지 누구에게 예속된 종이 아님"을 강조하시며, "당당한 주인으로서 하늘이 부여한 개성진리체로서의 가치를 자각하고 그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할 것"을 당부하시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글임도 느끼게 됩니다.
내외적으로 어렵다면 매우 어려운 시기에 '섭리를 생각할 때마다 남들은 곤히 잠든 시간이지만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고뇌의 사념으로 한마디 한마디가 정리되더라'시던 말씀의 단면이 위의 글로 표현되었다고 생각되며, 혼자서 섭리의 전체를 너무 걱정하시지 말고 편한 단잠을 주무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아둔한 애기라고 스스로 말씀을 하시는데요
애기들은 원래가 다 그런 것 안닌감유???
세월에 찌들지 않았으며
집안 살림에 걱정근심 필요 없는 둔한 애기 시절이 더 사람다웠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애기는 스스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본문은 상당히 고심하신 끝에 올리신 흔적이 역력합니다만
작금에 신은 신으로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본분이 따로 있는 것 아닙니까요.
우리 참부모님도 인간이지 신은 아니라는 것에 무게를 둔다면
누군가가 이단자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으로서 신의 대신 사명을 이루시는 참사람입니다.
자고로 신이라면 생로병사를 뛰어넘어서 영생불로의 길을 가야만 하지만
참아버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서 육신의 한계를 체감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며 누군가가 대신 갈 수도 없는 메시아의 길을 가시는
인간 메시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메시아가 늙으면 되는가라고 반문하시겠지만
살아계시는 하나님 메시아이시기에 자연의 섭리로 사신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지요.
근황을 살펴보면 이제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 거동이 편하신
우리 참아버님 생전에 천일국 기원절을 승리하시고
진정한 천일국과 지상천국을 안착시켜드리기를 기원하지만
역시 인간으로서의 기원이 저 하늘에 닿을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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