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논문<기독교적 여성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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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의지으로
남편과 일찍 사별 후 홀로 성공적인 삶을 개척한 김소엽 교수 -2009;12;4일 이대문학상 수상
승화된 사랑의 시적 자아
김소엽의 시집「그대는 별로 뜨고 」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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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서론
2. 은혜와 죽음의 질서적 경계
3. 창조적 유토피아의식
4. 결론
참고문헌
1. 서론
별과 사랑을 노래하는 김소엽 시인은 1978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최근에 나온 11번째 작품인 「사막에서 길을 찾네」시집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87년에 출간한 「그대는 별로 뜨고」라는 첫 시집이 10만권 이상 실적을 올렸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등단 30년째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은 아름답고 정렬된 시어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의 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낸다. 마음속의 진심을 깊이 있게 그대로 표출하는 시적 이미지는 전달력과 호소력이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윤동주 문학상, 기독교 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많은 시집이 있지만 가장 여성적 감성이 풍부한 작품인 「그대는 별로 뜨고」에서 기독교 신앙바탕 속에 남다른 죽음 의식이 담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곧 작품 속의 죽음의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분석과 시인은 죽음의 의미를 통해 충실한 삶을 살려고 하는 의지, 이러한 목적에 대해서 연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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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은혜와 죽음의 질서적 경계
김소엽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은혜로, 죽음을 극복하는 의지력 또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본다. 그의 시는 세기말의 종말적인 시가 아니라 새로운 세기를 맞기 위한 고통을 감내하는 의미로 나타난다. 수도자같이 끝없는 고독의 장에서 쓰러지지 않는다. 굳세게 견딜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된 일체감이다. 그래서 언제나 본심을 떠나 잠시 세상을 벗하여도 곧 순수한 여성적자아를 찾아 간다. 그의 시는 전체적으로 현실을 중심삼고 내적인 감정을 정화 시키고 있다. 최원규는 21세기 한국시의 전망을 이렇게 말한다. 활자의 위기가 오고 영상시대가 도래해서 시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 문화적 현실임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진화적 인식이 없이는 시의 영광을 돌려달라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이상주의자들의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시는 시대적 현실을 반영하는 역할에 충실 한다고 볼 수 있다.
떠도는 날에
언젠가 나도 몰래
도둑이 들어
내 마음 모두를 훔치어
달아나 버렸네.
잃어버린 보물 찾아
헤매인 십 년
빈 가지 끝에 걸린 해를 만나곤
비워 둔 집으로 되돌아왔네.
녹슨 자물쇠를 부수고
내 방에 들어와 보니
십 년 전 내 마음도 녹이 슬어서
고스란히 먼지 속에 놓이어 있네.
3연으로 된 시인의 시는 인간의 상반된 두 가지 마음을 잘 내포하고 있다. 하나의 공간에 대한 영적인 깊은 비애는 도둑이 든 마음에 대한 일탈된 자아를 바라본다. 시적진술은 사적 공간에서 보면 대단히 절실한 메시지이다. 현실적 차원의 나는 시적차원의 나에게 허구의 공간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인간의 두 마음 즉 인간의 사랑의 힘이 진리에 속한 하나님의 힘보다 센 것은 타락의 결과이다. 우리는 선악 가운데 악으로 기울기 쉬운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반복적으로 분실된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났다가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본향으로 회귀정신이다. 시인의 마음은 일탈하고 싶은 현실과 일상에서 본심으로 돌아오기 까지 과정에서의 고통이 따른다. 왜 십 년이라고 했는가. 십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 앞에 자신을 잃어버린 기간이다. 십년이면 산천이 변하는데 마음조차 변해야 한다. 그러나 오래된 먼지는 곧 두고 간 것들에 대한 애착이다. 사랑의 대상이 먼지로 날아가야 하는데 쌓인 것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미련이다. 도둑이 든 마음.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간 방, 이런 것들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다. 죽음같이 생이 먼지 낀 것처럼 적막한 것이다. 그러나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집으로 돌아온 것과 방으로 들어와 보는 것은 현실의 질서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주적인 아픔은 혼자만의 고통이 아닌 죽음을 초월하는 시적 의미이다. 자신의 본성을 찾기 까지 방황하는 갈등구조를 3연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가신님의 유업을 받들고
남은 생을 부끄러움 없이
성실히 살고 난 후에
기쁨으로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시편이다. 김소엽 시인은 학같이 우아한 시를, 겸손과 인내의 몸짓 같은 시어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잔잔하고 부드러움, 결코 거칠지 않는 죽음의 미학, 그 자체를 성지화한다. 이 시는 죽음에 대해 당당한 시적자아의고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시에서 죽음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육적인 삶보다 영혼의 자유를 그리는 신성한 기운이다. 별같이 잔잔하고 호수 같은 시심 속에 되새겨 있는 죽음에 대한 명상은 다채롭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그렇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희망적이다. 죽음 뒤의 삶이란 말처럼 죽음은 영원으로 연결된다. 죽음을 슬퍼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내세는 우리의 영원한 만남의 장이요 고통이 없는 곳이다. 신이 안주하는 그 곳에 가는 우리 생은 모든 것이 용서되고 화해를 통해 이해된다는 것이다. 비록 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데려가도 그것은 신이 계획한 운명적인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시인을 시인답게 쓰기 위해 진지한 생의 태도를 가지게 한다. 신이 지상에 보낸 김소엽 시인의 자태는 그의 시처럼 지나치게 여성적이다. 그러나 그 속에 강인한 생존의식를 가지고, 현실을 타개하는 의지를 보인다. 죽음에 대한 그의 명상은 부정도 긍정도 아닌 알 수 없는 삶의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죽음을 기다리며 체념하는 무기력한 우리의 자화상을 반성하며 바라보게 한다.
은혜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당신이 곁에 계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과 함께 시작하여
내 의식의 구석구석에
당신이 살고 계심을
감사하나이다.
하루가 지나감은
당신과 만날 날이
하루만큼 가까워 옴을
압니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삶을 극복하는
죽음을 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강은 흘러가야
생명이 있듯이
사람은 죽어야만 생명을 가지는 것
삶이 끝나는 것은 은혜입니다.
이 시에서도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자세, 곧 살아있는 생존에 대한 환희다. 세련된 언어 감각이 심중깊이 다가오면서도 마지막의 은혜의 공간은 다른 뜻을 내포한다. 신과 대화일 수도 있고 자신과의 속삭임 일 수도 있고 멀리 간 님에 대한 그리움이 은혜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함께 지켜준다는 감사함이다. 하나님과의 가까워짐에 은혜로움이다. 죽음을 재촉하는 세월이 간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축복을 다른 각도로 보고 있다. 축복은 평범한 일상에서 받는 축복이 아니라 소멸하고 퇴색되어 가는 것에 대한 축복이다. 여기서 몇 번 언급한 당신은 신학적인 하나님과 영적으로 가신님을 동일시한다.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사랑과 영적인 곳으로 간 인물에 대한 사랑을 동등하게 느낀다. 그러므로 먼저 죽음의 공간을 주신 것이 은혜라고 본다. 언젠가는 모두 죽음 앞에 굴복하지만 그것을 은혜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죽음의 초월성이다. 죽음을 이기는 정신은 허무한 사망의 바탕에서 기인된다. 생명,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혹시 신의 것인지도 모를 존재의 비극에 대해 마음을 비운 상태이다. 평생 수많은 시간을 죽음의 끝, 삶이 끝나는 것을 은혜로 알고 산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시인만의 고독한 기도의 성과이다. 죽음이 은혜로 환원되는 순간 우리는 죽은 시의 부활을 경험한다. 왜냐하면 부활은 죽음 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김시인의 작품 속에는 삶의 고통스런 순간을 많이 체험한 것이 나타난다. 그 고통이 다시 승화된 부활시로서 죽음을 극복했음을 알 수 있다.
2.창조적 유토피아의식
현재를 극복하려는 운명적인 표현양식은 피안의 사상이다 .디지털 사회는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가 될지 모른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죽음과 맞선 초월의 의지를 나타낸다. 현실과 초월을 동시에 접하며 미래의 피안으로 가는 양식은 십지가의식이다.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십자가정신은 자신의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을 기대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평정신이라 할 수 있다.
별 ㆍ 7
눈물마다 하늘에 올라가
이별마다 하늘에 올라가
은하의 강이 되고
빛나는 별이 되어
영혼까지 비추는 별이 된 것을
아름다운 죽음마다
별이 되어서
이생의 죄를 지고 가나니
서러워 말라
너도 곧 별이 될 것을
별이 되어
하늘에서 만날 것을
은하수 타고 가며
그 때의 이별을
노래할 것을
이 시에서는 견우와 직녀의 만남이 연상된다. 여기서도 3연에 만남을 절실히 기대한다. 그는 오작교가 되어 줄 별무리들의 길에서 우리는 눈물이나 이별의 아픈 상처를 별에게 이야기 한다. 별의 아름다움이 곧 죽음의 환상이다. 윤동주의 별과 김소엽의 별은 성별이 다르지만 그리움의 영역은 동일하다고 본다. 여성은 하늘과 별과 신을 안식처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차단된 낯선 남성세계, 교류가 단절된 현실에서 대화의 산물이 요구된다. 그리고 여성의 시적자아는 자기반성을 동반하기도 한다. 별이 찬란한 사랑이라든지, 별이 되고만 그리운 것들이든지, 여성에게 아득한 향수를 준다. 사는 동안 이생의 죄를 지고 가나니 별이 되면 죄가 사해질까, 죄는 별처럼 남아서 우리를 정죄할까. 이생의 죄는 지었지만 별이 되어서 탈바꿈 할 것이다. 죄가 이별을 낳고 죄가 죽음아래 별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별은 생성 변형하여 새로운 탄생을 일으킨다. 반복적으로 죽음을 슬퍼하지 마라는 예시적인 죽음 옹호주의이다. 두려움 없는 죽음과 가까워져 이미 시인은 죽음과 하나 되어 융합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자들의 증언
버리라 한다
당신하고 같이한 소중한 시간을
저 흐르는 강물 위에
돛단배처럼 띄워 보내라 한다.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 지내게 하고
산 자는 살아서 살 길을 찾으라 한다.
새벽녘엔 하늘도 크게 울었다.
큰 울음으로 이승과 저승의 금을 긋고
다시는 울지 말으라 한다.
이제부터는 꽃뱀을 집어 삼키고
독음 품으면서 살으라 한다.
그 편이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 산 자의 편이 되었다.
죽은 자에겐 무정했고 냉정했다.
이제 그의 시는 살아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지만 존재해야 할 지상이기에 타인을 의식해 본다 .그래서 죽은 자가 곧 산자이고 산자가 곧 죽은 자임을 성서의 말씀을 인용한다. 산 자는 기쁨도 누리고 슬픔을 지나치지만 죽은 자는 모든 것을 침묵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갖는 슬픔, 죽은 것 같은 느낌, 이것이 성서에서 말하는 산자의 죽음이다.
인생은 두 개의 사건 뿐이다 탄생과 죽음이 그것이다.어느 사형수가 감방 벽에 쓴 낙서이다. 목숨의 유효기간은 한정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부정적이다. 한편 인간존재의 기본적인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종교는 삶의 유한성을 영원성으로 간주해 사후의 세계를 알게 한다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 이승과 저승, 이런 두 공간적 거리감은 대립과 모순의 관계로 파악된다 보는 것이다. 공후인의 곽리자고와 여옥처럼 강을 배경으로 한 원초적인 죽음 이야기와 유사하다. 여기서 죽음에 반응하는 생자의 태도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그리움의 승화식를 위해 시적정서를 유발 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집 평설을 쓴 이명재는 시어활용이나 우리의 원초적 정서를 자아내어 감동을 주고 자연스런 시인의 시적 내재율은 청각적 결을 살리고 아울러 시각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절대순응의 신앙으로 죽음을 축복으로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구도자적 자세라고 보고 있다.
4. 결론
죽음과 삶에 대한 성서적 개념은 누가복음 9장 60절의 기록을 보면, 부친을 장사하기 위하여 자기 집에 가려고 하는 제자에게 예수님은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죽음과 삶에 각각 서로 뜻을 달리하는 두 가지의 개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장사를 치러야 할 그 제자의 부친과 같이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죽음’에 대한 생사의 개념이다. 둘째는 그 죽은 부친을 장사하기 위하여 모여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적하여 말하는 ‘죽음’에 대한 생사의 개념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3장 1절에 기록된 바, 비신앙적인 사데교회의 신도들에게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라고 한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살았다지만 죽음 속에서 영위 되고 있다.
무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언제 막 내고 끝날지 모를 연극무대에서 열심히 유토피아를 건설하며 살고 있는 것이 진실이다. 세상사람 대다수는 육신을 가졌으나 외적형상으로 만 살 뿐이다. 죽음의 길을 준비하다가 믿음으로 죽음을 초월하는 시인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 죽음을 통해 생의 소중함을 재인식하여 그의 시는 감사하는 시로서 영광을 돌린다. 죽음을 건너서 성공적인 삶을 보여준 믿음으로 받은 시의 힘은 강하다. 한 생명을 살리고 또 많은 생명에게 용기를 주는 문학의 위대성을 본다. 곱고 단아한 문체 ,결코 거칠지 않은 부드러운 리듬의 한국적 여성시의 진면목이다. 그의 작품은 초월자인 신에 대한 초월적 사랑과 그리움을 승화시킨 기독교적 시정신이 깃들어 있지만 어두운 죽음을 은혜로 축복으로 안다는 것이 작품속의 핵심이 된다고 본다. 순종의 삶속에 육신의 삶을 절대자에게 맡기고 우주적인 상실된 슬픔을 남다르게 죽음의 미학적 효과를 드러냈다.
참고문헌
김소엽,『그대는 별로 뜨고』,문학세계사, 1987
김신영 ,『한국현대여성시의 공간적 상징연구』,중앙대대학원 ,논문
이재선, 『한국문학주제론』,서강대학교 출판부,2006
오규원,『 현대시작법』, 문학과지성사, 1992
전기철,『한국현대문학비평입문』,자유사상사,1995
정한모외,『한국대표시평설』, 문학셰계사 ,1995
최원규,『우리시대 시문학의 공간적 위상』, 오늘의문학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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