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작가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우리 민족과 우리 나라를 이야기 하는 것이어서 소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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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oge de la Coree"
"한국찬가"
귀한 책을 어느 회원으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작가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우리 민족과 우리 나라를 이야기 하는 것이어서 소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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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본이네요.출판사항이 없어 헌책방을 뒤졌더니 한 군데에 있더군요.
• 지은이 | C.V.게오르규 |
• 옮긴이 | 민희식 |
• 출판사 | 범서출판사 |
• 년도 | 1984 |
• 쪽수 | 192 |
저자 게오규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프랑스인 신부(희랍정교)로 『25시』라는 책으로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74년 이후 세 번씩이나 한국을 다녀갔는데,
이 글은 지난 84년에 다녀가면서 범어출판사에 남긴 미공개 신작 산문시「한국찬가」를 제1장으로 하고,
74년 월간문학사상사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여러 강연원고와 그때의 대담들을 모은 「빛은 동방에서」를 제2장,
게오르규의 전 저작집에서 뽑은 그의「어록」을 제3장으로 하여 범어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입니다.
그의 신작인 제1장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한국 찬가
극동의 미지의 나라
나는 한국을 사랑하고 찬미한다.
그것은 나로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나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늦게 한국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항상 모범적인 우등생이었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중학교인 군사중등학교에 다녔다.
학생들은 국왕의 제복을 입었으며 40명을 뽑는데 2천명의 지원자가 몰려을 정도로 경쟁이 심한 학교였다.
교수들도 가장 뛰어난 분들이었으나 8년 후 내가 중학을 졸업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한국의 민중과 한국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다시 대학공부를 마쳤고 루마니아의 해외 주재 대사관의 문정관이되었다.
나는 외교관이었으나 여전히 한국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극동아시아의 한쪽 구석에 하나의 반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I945년 여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었다.
일본제국이 패망하고 5천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인이 독립을 선언하였을 때 붉은 군대는 나의 고향을 점거하였고 나는 포로의 몸이었다.
나에게는 한국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 책이나 도서관도 없었다.
나는 감옥에 있었던 것이다.
고립된 채로 나는 한국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산 채 매장된 민족들
어찌하여 나는 한국 민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가?
그것은 학교 교과서에 그 이름과그 역사가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도에도 한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반도였을 뿐이다.
한국인을 살아있는 민족의 리스트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1919년 3월 1일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한국인들은 봉기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다.
한국인들은 파리의 평화회의에도 참석하였고 한국인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들은 살과 뼈를 가진 민족으로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온 것이다.
월슨 대통령과 파리의 평화회의의 의원들은 한국인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으나 그 후 그들은 공식적으로 한국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침략자의 비위를 거슬리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지상에 살아있는 인간의 리스트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삭제하였던 것이다.
내가 한국의 존재에 대해서 오랫동안 알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어떤 나라의 교과서나 어떠한 역사 지리책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일을 상기할 때 나는 분노와 반항과 노여움과 고통으로 이를 악물게 된다.
왜냐하면 인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잔학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 채로 인간을 매장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한민족 전체를 생매장하는 것이다. 수천 만의 인간을…….
그것은 노예제도보다 더 나쁘다.
노예상인은 인간을 광장에 내놓고 무게를 달고 재고 해서 판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노예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족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 하나의 예가 있다.
유럽의 내부에 세 개의 멋진 소수 민족이 있다.
그 하나하나가 고유한 언어와 조국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리튜아니아인, 에스토니아인, 그리고레트인들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 세 나라는 유럽의 지도에서다 없어져버렸다.
발트의 세 나라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 세 나라는 소련에 병합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발트의 백성만이 산 채로 매장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똑 같은 비극 속에 사는 다른 민족들이 있다.
그것은 자유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소련을 자극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소련과 협상을 하기를 원한다.
그들과 무역을 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살아있는 민족을 리스트에서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소련이다.
아시아의 귀고리
한국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림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극동 아시아의 하나의 반도이다.
그러나 평면구형도(평면구형도)를 놓고 볼 때 그것은 반도가 아니다.
한국은 아시아 대륙의 귀고리다.
아시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 자리에 한국이라는 귀고리를 달아 놓은 것이다.
한국은 보석처럼 정교하게 깎여지고 만들어지고 가꾸어진 것이다.
그 해안은 레이스로 되어 있다.
칠보로 되어 있다.
그것은 정말로 자수이다.
오직 보석만이 그러한 식으로 재단된다.
한국은 반도가 아니고 장식품이다.
하나의 보석, 하나의 귀고리이다.
레이스로 수놓은 천 8백 킬로미터의 해안에 3천 4백 개의 섬이 있다.
세공된 크고 작은 섬, 온갖 형태의 섬들이 해안을 장식하고 있다.
이 해안에서 등을 돌려 한국의 내부로 시선을 돌린다면 한국이 보석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지리학자는 이 반도는 4분의 3이 산악지대라고 말할 것이다.
구름 위까지 뻗치는 산이 있고 거기에 다른 산들이 연결되어 있다.
토지의 기복을 제하면 그것은 해안과 마찬가지의 레이스이다.
산들은 구름에 걸린 레이스와도 같다.
레이스를 이루는 산꼭대기인지, 하늘과 구름인지 때로는 분간할 수가 없다.
아시아의 귀고리는 부조(부조)로 된 작품이다.
그 산은 칠보의 레이스이다.
지도상의 한국은 매우 작다.
모든 보석이 그런 것처럼 하나의 귀고리는 제 아무리 커도 역시 작은 것이다.
한국은 22만 평방킬로미터 라고 씌어 있다.
나에게 있어서 그 면적은 평방킬로로 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한국은 정확하게 나의 조국 루마니아와 같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조국은 어머니이다.
어떤 것이 자기 어머니와 같은 크기를 가졌을 때 면적이라는 말은 의미를 잃는다.
그것이 설사 저속한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만일 사람들이 나에게 한국의 크기는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라.
한국은 나의 어머니의 크기, 나의 조국의 크기이다 라고…….
비단옷을 만드는 종교
한국인은 이곳 지상에 어떻게 나타났는가?
어떻게 그들은 아시아 대륙의 귀고리를 자기의 조국으로 만들었는가?
사랑하는 자에게 인간은 수많은 종류의 질문을 하는 법이다.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 자신이 한국인을 여기 이 자리에 자리잡게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날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것은 기원전 2333년 10월 3 일이다.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예외적인 존재는 초현실적인 기원을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아프로디테는 바다의 거품 속에서 태어났다.
하나님의 친구인 모세는 나일강의 푸른 물 위에 떠 있는 광주리 속에서 발견되었다.
로마제국은 암이리에 의해서 키워진 로뮤루스와 레뮤스란 쌍동이가 건설하였다.
한국은 한국을 창조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백두산 꼭대기로 내려온 단군이라는 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한국은 또한 세계에서 그 문자의 공포일을 국경일로 삼는 유일한 나라이다.
한글날인 10월 9일은 공휴일이다. 마치 7월 14일이 프랑스의 국경일인 것처럼 ‥‥‥.
단군은 한국인에게 꾸지뽕나무 재배와 직조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의류에 대한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는 옷을 벗고 살다가 포도잎으로 옷을 대치하고자 한 일이 있다.
단군은 여자에게 비단옷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여자들은 쉽사리 그 일에 익숙해졌다.
한국의 비단은 선녀의 옷과도 같았다.
몽고의 유목민이 한국을 침략하였을 때 한국 여인이 다채로운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라고 불렀다.
단군은 민족의 왕이며 아버지이며 주인이다.
그가 한국 민족에게 내린 헌법은 한 마디로 요약된다.
그것은 홍익인간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복을 주는 일이다.
그 이후 한국인은 다른 많은 종교를 받아들였지만 단군의 법은 변함 없이 5천여 년동안 계속 유지되고 있다.
왜냐하면 단군의 법은 어떠한 신앙과도 모순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모든 종교나 철학의 이상적인 형태로「최대한의 인간을 위한 최대한의 행복」
또는 모든 인류를 위한 행복과 평화이다.
우주를 향한 깃발
국기란 조국의 참된 현존이다.
내가 프랑스의 깃발에 인사할 때 내가 새로 얻은 조국인 프랑스는 나의 눈앞에 존재한다.
유엔이나 유네스코 등 모든 국제기구 건물에서는 많은 나라의 국기를 볼 수 있다.
수 많은 민족, 땅, 역사가 그 국기들에 나타나 있다.
국기는 각기 다르며 그 민족들도 너무나 다르다.
만국기를 보면서 나의 마음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기가 없는, 산 채로 매장된 국가에 대한 것이다.
다음에 소련에 지배되는 나라들이 떠오른다.
자유를 잃은 민족 - 불가리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 그 밖의 많은 다른 나라들.
국기는 지배자의 표지를 달고 있다.
낫과 망치, 소련의 문장, 가축이 그 소유자의 이름의 첫글자를 붉은 쇠로 몸에 낙인 찍듯 소련에 예속된 나라들은 모두 망치와 낫의 표지를 지니고 있다.
이 지상에 살아있는 나라의 국기 가운데 붉은색·노란색· 파란색으로 된 삼색의 루마니아 국기를 볼 수 있다.
지금 이 국기는 차드의 국기이다.
루마니아를 지배한 후 붉은 군대는 루마니아의 국기를 차드인에게 팔아버렸다.
이 중앙 아프리카의 흑인은 근래에 독립한 것이다.
그 민족은 국기가 없었다.
붉은 군대는 그 혹인들에게 우리의 국기를 판 것이다.
나는 요사이 매일 같이 뤼 드 벨르 페이유에 있는 파리의 차드 대사관 앞을 지나가며 나의 국기에 인사한다.
나는 나의 조국 루마니아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나의 조국, 나의 어머니에게…….
한국의 국기는 유일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거기에는 세계의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는 멋지다.
거기에는 하늘과 땅, 네 개의 방향, 낮과 밤과 사계절을 나타내는 선과 점이 있다.
그것은 우주를 나타낸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 선과 악, 불과 물이 있다.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이나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점·원, 붉은색·흰색 그리고 파란색으로그려져 있다.
일본이 한국의 국기를 말살했을 때 한국인은 무궁화를 심었다.
무궁화보다 더 한국 민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없다.
한국 사람은 그것을 영원한 꽃이라고 부른다.
일본인이 그들에게 그들의 국기를 금지했을 때 수백 만의 한국인은 도처에 무궁화를 심었다.
그 꽃이 그들의 국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는 감시하였다.
일본제국은 한국인에게 무궁화를 심는 일까지 금지하였다.
지배자의 군대는 한국 전 지역에서 무궁화를 뽑아버렸다.
무궁화는 정복자들에게는 위험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뿌리째 뽑아야만 했다.
금지된 것은 국기와 무궁화 뿐은 아니었다.
일본의 지배 하에서는 연도 역시 금지되었다.
한국에서 연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신년에 어린이들은 모두 그들의 소원을 하늘에 보내기 위해서 연을 올리고 연끼리 싸우게 한 것이다.
가장 강한 연이 적수의 연 끈을 끊고 싸움을 종결짓는다.
승리자의 연이 땅에 내려지면 수많은 군중들은 운동시합의 챔피언을 맞이하듯 박수갈채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지배자들은 연의 제조와 싸움도 금지케 하였다.
연을 가지고 놀 때 한국인은 의젓하였다.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쳐다보는 자는 노예의 조건을 거부한다.
일본인은 포로가 된 자가 자유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이다.
승자는 차라리 용감한 죄인이 되고,
1945년 이래 한국의 국기는 다시 하늘에 휘날리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상징인 무궁화는 도처에서 재배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45년 해방된 날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한국의 반은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쿠바, 앙고라처럼 소련의 고행의 공화국이 되었다.
한반도의 북쪽에는 한국의 국기는 휘날리지 않고 무궁화도 피지 않는다.
사랑과 자유를 위한 싸움
무엇보다도 나를 한국과 강하게 유대를 맺게 하는 것, 그리고 한국을 열렬하게 사랑하게 하는 것은 그 군대이다.
그것은 1944년 8월 23일 붉은 군대가 루마니아를 지배하여 나에게는 이미 조국의 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이래 나의 어머니인 조국은 자유를 잃고 나의 민족은 노예상태에 빠졌다.
나의 나라의 군대는 패배하여 해산되어 버렸다.
똑 같은 일이 헝가리나 모든 동구라파의 나라에서 벌어졌다.
우리는 우리를 해방시킬 자국의 군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나의 조국을 지배하는 붉은 군대와 싸우는 유일한 군대는 한국의 군대이다.
한국군은 나의 백성을 해방시켜주는 군대이기도 한 것이다.
길에서 지나가는 한국 군인을 만나면 나는 절을 한다.
한국군은 한국의 자유를 지키고 북반부를 해방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뿐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자유를 잃은 민족을 해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소련과 싸움으로써 한국관은 월남, 라오스, 앙고라의 해방을 위해서도 싸우는 셈이고 그 지배자에 의해 예속된 지상의 3분의 1 이상의 민족을 위하여싸우는 것이다.
시인으로서 나는 한국군을 찬양하는 데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는데 그것은 한국군의 장교가 계급장으로 어깨에 무궁화를 달고 있는 데 기인한다.
소령은 무궁화 하나, 중령은 둘, 대령은 셋‥‥
그래서 내가 한국군인에게 인사를 할 때 나는 그 무궁화에 인사하는 것이다.
하위의 장교들은 어깨에 꽃을 달지않는다.
그들은 잎을 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무궁화의 잎이다.
열원히 피는 꽃의 잎사귀들….
노년의 왕관
현대 사회에 있어서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노인에 대한 공경이다.
현재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노인들은 버림을 받고 있다.
나에게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변호사인 한 사람의 친구가 있다.
어느 날 그는 파리에 왔다.
그는 머리에 염색을 하고 있었다.
「자네 암탉처럼 머리를 염색했군. 웬일이야?」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는 그의 염색한 머리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참다운 루마니아인이었다.
루마니아 사람은 머리를 염색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년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노년은 인생의 일부이다. 죽음이 그렇듯이‥‥‥.
「만일 내가 머리를 염색하지 않으면 나는 미국에서 직업을 유지할 수 없다네.」하고 나의 친구는 변명을 하였다.
나는 미국에 살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지상의 모든 가난한 자들은 미국을 꿈꾼다.
그곳은 풍요의 나라이다.
이전에 나도 미국에 사는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는 백만장자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를 가련하게 여긴다.
루마니아에는 노인이 없는 마을은 노인을 하나 사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세계 어디에도 노인들이 한국처럼 존경받는 곳은 없다.
모든 문명화된 나라에서 노년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늙는 것이 부끄럽다.
자동차 공장의 못쓰게 된 부속품처럼 사람들은 노년을 가려낸다.
한국은 이와는 반대이다.
한국에서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존경을 받는다.
나의 책의 한국어 번역을 한 여성은 대학의 교수이다.
아주 귀여운 부인이다.
그녀는 다람쥐 같은 익숙한 손을 가지고 있다.
그녀를 볼 때 나는 제비를 연상한다.
나는 그녀 이름을 한국어로 발음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녀를 「제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말을 할 적마다 그녀는 나를 노인처럼 대접한다.
그녀는 내가 마치 백 살쯤이나 된 것처럼 나를 자상하게 돌본다.
마침내 나는 좀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부인, 왜 당신은 항상 나를 늙은이 취급을 합니까? 물론 나는 늙었소.
나도 그것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의 남편보다 아주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요.
그에게 당신은 항상 그가 늙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죠. 」
「
내가 당신을 노인대접하는 것은 존경하는 뜻에서입니다, 신부님.」 하고 그녀는 대답하였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고 매우 당황해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한국에서 누군가를 노인처럼 대접하는 것은 그가 아름답고 현명하다고 칭찬하는 것보다 더 큰 존경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나는 놀랐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동방의 기독교도들이 사제가 비록 나이가 어려도 카로이로스(Kaloyeros)」즉 「아름다운 노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기하였다.
왜냐하면 노인은 현명한 자이고 그 예지는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늙은이처럼 슬기롭게 사는 사제는 비록 나이가 스무살 정도라도 역시 아름다운 노인인 것이다.
노인의 슬기를 공경할 줄 아는것, 바로 이것이 다른 문명화된 나라가 한국에서 배울 점 이다.
내가 한국에 왔을 때 나의 도착을 알리는 신문들은 내 나이를 두 살이나 더 붙였다.
처음에 나는 항의하였다.
늙는 것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는 자기의 나이에, 태어나기 전에 살아온 아흡 달을 덧붙인다.
그 다음에 또 한살 더 붙여서 계산한다.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영광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인간은 성숙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앙새의 사랑
지상의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행복을 갈망한다.
단군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생을 영위하여야 한다.
나는 한국인에 있어서 행복이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느냐에 대해 알려고 시도하였다.
그것은 배우기 쉬웠다.
행복의 표어는 병풍에 새겨져 있다.
벽에 붙인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모두가 이 행복의 말을 알고 있다.
나는 행복의 요소가 다섯 가지임을 배우고 있다.
장수, 부, 평화와 건강, 자식과 덕, 편안한 죽음.
두 번째 표어인 부는 장수 후의 부이며, 세째가 건강, 네째가 불행의 결여이고 다섯번째가 덕이다.
세 번째 리스트는 행복의 조건으로 장수·부·고귀함·평화·건강 그리고 다섯 번째가 풍요이다.
행복을 열거한 리스트 가운데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사랑이라는 말이 없는 점이다.
서양에서는 사랑을 제일 첫머리에 놓는다. 그것은 개인의 행복의 요소 중 하나이다.
한국인은 결코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인가?
인류의 시초 이래 세상의 모든 시인들이 읊고 연극의 장면에서 음악으로 노래부른 사랑이 한국에는 없는 것일까?
나는 감히 갑작스럽게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남녀의 거동을 관찰하였다.
한국인은 세계의 모든 젊은 남녀와 똑 같은 사랑의 몸짓을 하였다.
한국인에 있어서는 서구의 나라 사람들보다 사랑이 좀 수줍고 내부에 간직되어 있었을 따름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차이였다.
세상 어디서나 사랑의 상징은 비둘기이다.
아주 사랑스러운 새이다.
그 새는 육신화된 애정을 나타낸다.
한국에서의 사랑의 상징은 오리이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모든 혼례의 방에는 병풍에 그려진 오리를 볼 수 있었다.
침대 옆 테이블, 사기나 도자기에도 나무로 된 오리가 있다.
집집의 어디에나 오리가 있다.
나는 박물관에서도 오리를 보았다.
그것은 언제나 사랑의 상징이었다.
한국의 건국 이래, 즉 기원전 2333년 10월 3일 이래 모든 화가들은 화폭에 오리를 그렸다.
한국의 시인들은 항상 오리를 노래하였다.
나는 사랑의 상징으로 이 새를 고른 것이 이상하여 오리의 모든 종류에 대해서 자료를 모아보았다
첫 번째로 내가 놀란 것은 우리 서양 사람들도 오리를 사랑의 상징으로 여긴 것을 알았을 때이다.
그것은 백조이다.
그런데 백조는 오리이다.
백조의 노래만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백조가 오리의 종류에 든다고 해서 오리를 사랑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새들 가운데 오리만이 일부일처제이다.
그 말은 충실하다는 뜻이다.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충실성이다.
우리 기독교 신자도 역시 그것을 선언한다.
「죽을 때까지 충실하라. 그러면 왕관을 얻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결혼을 통해 남자와 여자는 영원히 결합된다.
좋은 경우나 최악의 경우나 결혼이란 헤어질 수 없는 것이다.
실제 결혼에 있어 그것은 실천되지 않은 채 이론적으로만 가능하였다.
한국에 있어서 충실성이 없는 사랑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너무나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시골의 여인들은 과부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 그 여자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놀라는 것이다.
결혼의 결합은 그처럼 강하기 때문에 그의 동반자가 죽은 후에도 살아있을 때는 놀라는 것이다.
과부는 흔히 미망인이라고 불린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살아있는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놀란다.
한국에서 죽은 사람은 「도착한 사람」이 라 부르고 살아있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한국적인 사랑은 또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이해관계를 초월한 것이다.
인간이 서로 사랑할 때 사로 기다리지 않는 법이다.
젊은 남자나 여자는 그 사랑의 대상이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건 적대시하건 무관심하건 언제나 사랑하는 법이다.
그것은 무조건의 사랑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규칙을 벗어난다.
서양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자기 애인의 정복이나 자기 곁에 잡아두려는 줄거리는 한국의 여인들에게는 이상한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위하여 사랑한다.
그들은 소유의 갈망이나 파괴적인 질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한 젊은 한국의 여인이 어느 날 우리집에 왔다.
나는 문을 열어주었 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한국의 습관에 따라 신을 문 앞에 놓았다.
그녀는 파리에 들른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의자 위에 앉았다. 그녀는 밤새도록 여행을 하였기 때문에 피곤했다.
그녀는 한국식으로 앉았다.
그녀는 의사의 치료를 받기 위해서 미국에 갔다오는 길이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암에 걸려 있었다.
미국 학자들은 그녀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곧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왔다.
그녀는 아직 인생의 반도 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행복해 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정리했어요.
이제 저는 편안하게 죽을 수 있어요」
나는 그녀가 편안하게 죽기 위해서 무엇을 정리하였는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오직 성인만이 행복하게 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저는 제 남편을 몹시 사랑했읍니다」하고 그녀는 말했다.
「전 그의 취미는 뭐든지 다 알고 있어요.
그의 버릇도 모두 알고 있죠, 그의 변덕까지도요.
저는 제가 죽는 날 저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처녀를 찾아냈어요.
저의 남편은 아무 것도 눈치를 못 채고 있지요.
제가 불치의 병에 걸려 있는 것을 알기가 무섭게 나는 그녀를 우리집으로 오도록 했어요.
그리고 그녀에게 나의 남편을 돌보아주는 일을 맹세케 하였죠.
제가 죽으면 제자리를 대신 맡아 달라고요.
저는 물건이 들어있는 모든 서랍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지요 그리고 저의 남편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어요.
그리고 어린애를 돌보는 법도 가르쳐 주었어요.
그녀는 저를 대신해주기로 약속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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