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스님과 제로황제,지개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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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T스님과 제로황제, 지개야 스님
인연 따라 먼 여행길에 올라 보았다.
오래전부터 상주에 <시온 산> 이란 기도원 문 정주원장의 초청에 응해서였다.
문 여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재작년 대구 팔공산에 갔을 때다.
그때 만난 인연이 서울에 올라오면 연락이 닿을 때 가끔 만나 보게 되었고, 언젠가 상주에 구경삼아 한번 다녀가길 바랐지만 그리 쉽게 짬이 나질 않았다.
그래 큰맘 먹고 올 가을엔 상주를 돌아보고, 경북일대와 강원 내륙지방도 돌아보려니 했는데, 다행스레 며칠쯤 여유가 있겠다 싶어 상주부터 달려가기로 작정을 했다.
떠나기 바로 전날 진천에서 문학상 행사가 열려 농 다리와 선비 촌, 길상사 등을 돌아보며
내일 가면 어떻겠느냐고 전화를 했더니 흔쾌히 어서 오라고 했다.
상주를 가려면 고속도로가 잘 나있기에 속히 갈 수 있는 매우 가까운 거리가 되었지만, 필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하니 일반도로를 탈수밖에 없는 일....
그래 기왕이면 좀 더 알뜰히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문경 새재를 넘기로 했다.
문경을 가려면 천안에선 진천과 증평, 괴산을 지나서 가야만 한다.
병 천을 지나 오 창을 거쳐 진천 초평저수지에 이르렀다.
초평 저수지 앞에 있는 농 다리를 다시 둘러보며, 일부러 산 간 둘레 길을 타다보니 시간은 제법 많이 흘렀다.
그래도 그냥 쉽게 가는 길보다 나는 구경거리가 있는 그 길이 맛이 나고 재미가 있다.
초평저수지에서 두타산을 넘으니 증평 땅이다.
증평에선 곧바로 괴산을 지나니 문경으로 넘는 고갯길 높은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 과거보러 영남에서 올라오던 선비들이 모두가 저 산들을 넘어야만 하였으리라...
영남 선비들이 한양을 가려는 데는 죽령과 조령, 그리고 추풍령고개를 말을 타고 넘어야만 했단다.
이들 세 고갯길을 영남 3관문이라 불렀는데, 조령이라 일컫는 이곳이 곧 문경 새재다.
새재란 말은 “새도 날아서 넘기가 힘든 고개”란 말에서 유래되었다니 참으로 험준한 고개임엔 틀림없다하겠다.
괴산을 통과하며 이화령고개를 쳐다보니 아득한 생각이 든다.
지난 8월 달에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를 하며 올라본 그 고개이기에 더욱 감회가 새롭다.
터널을 빠져나니 곧바로 문경 땅ㅡ.
다시 목적지 상주를 향해 달려가다 상주 보(洑)를 가는 이정표 앞에서 화북면을 물었더니, 은척면을 지나 농 암 쪽으로 가라고 일러준다.
쉬이 가는 길이려니 했는데, 가는 길은 의외로 생각보다 엄청나게 멀었다.
농암면은 상주 골이 아니고 문경과 괴산을 지나치는 지역이었고, 농암을 지나니 비로소 쌍 곡 계곡이 나오더니, 다시 터널을 지나서야 비로소 화북면이 나타난다.
화북면소재지에서도 입 석리 까진 꽤나 달려야만 했고, 물어물어 찾아간 송학동....
송학 마을 도로변에서 포도를 파시던 할머니가 포도 한 송이를 맛보라고 건네주신다.
인심 후한 할머니를 만나 기분 좋게 포도 한 송이 먹고 나니 시장기가 가신다.
어디선가 점심을 먹고 가려니 했는데 마땅한 시간을 갖지 못해, 점심때가 훌쩍 지나쳐버린 시간이었다.
상주포도는 당도가 매우 높아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포도보다 값이 비싸다고 말한다.
얼른 할머니한테 포도 한 상자를 사들고 시 온산을 곧장 찾아갔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길에 뜻 밖에도 많은 사람들과 이런 저런 많은 인연을 가졌다.
시온 산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을 위시해서, 다음 여행지 칠장사와 묵언마을에서 인연된 분이 있는가하면, 안성 미리 내 <로사정원>에서 알게 된 다수의 성악가수와 문인들...
그중에도 특별히 E T 스님과 제로황제, 그리고 지개야 스님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우선 만난 순서대로 제로황제부터 서술해 보자.
제로황제는 문 원장의 남편 되는 김 영래라는 인물로 진정 선생이라 불렸다.
우선 외모부터 도인이란 느낌이 절로 풍겨온다.
하얀 복식에다 머리도 허였고 수염까지 길렀으니 영락없는 80대 노인...
실제 나이는 나보다도 서너 살 아래였는데 말이다.
평소 통 말이 없다고 하여 그런가보다 하였는데, 나를 만나고선 말문이 터지더니 그야말로 청산유수 달변가였다.
한번 시작된 이야기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어져 갔는데, 참 박식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력은 겨우 국졸이라 들었는데 논리전개가 너무도 정연하여 보통의 경지를 뛰어 넘는다.
그가 설하는 대부분 이야기는 종교적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종교 이야기는 실상 끝없는 논쟁이 되기 십상이다.
해서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끼리는 정치와 종교이야기는 될 수 있는 한 삼가 하라는 주문이 따른다.
그러기에 이런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 이야기를 먼저 존중하고 충분히 들어줄 필요가 있다.
제로황제는 기독교와 불교, 민족 신앙과 천부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지식에다, 특히 수리에 대한 해박한 논리를 펴나갔다.
그중에도 그는 천부경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다행이 필자도 일찍이 천부경을 접해보았고, 그 분야에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리만큼 박식했던 김 재휘교수님과 박 길년선생의 명 강의를 들어둔 것이 대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제로황제는 천도교의 인내천(人 乃 天)사상보다도, 천부경 말미에 나오는 “인 중 천 지 일(人中 天 地 一)”이 훨씬 심오한 내용이라고 설파를 해나갔다.
그가 논하는 이야기 중에는 중국고대의 하도(河圖)와 주역의 수리까지도 언급되어 나온다.
그의 수리 론에 의하면 이 우주는 본래 수리로 출발하였으며, 수리로 형성되어 있는 우주의 비밀도 수리로 풀어나가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1부터 10까지의 수를 전체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 1의 숫자에 앞서 .(점) 이 그 출발점이며 그 점을 영이나 점이라 하지 않고 제로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
이 제로를 자신이 발견했기에 자신을 제로 황제라 스스로 자처하게 되었고, 제로황제는 첫째 누가 황제로 추대시켜줄 필요가 없으며, 둘째는 단 한사람의 백성도 필요가 없단다.
따라서 하나님도 자기 수중에 있으며, 자기를 통해 하나님도 비로소 완전해 진다고도 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일견 그럴 듯하면서도 참으로 황당한 곳으로 흘러간다.
이래서 도인들은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지게 되며, 그러면서도 자기소신이 옳은 줄로만 착각하며 일생을 허망하게 보내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다음에는 E T스님을 만나러 가보자.
그가 있다는 원적 사는 일찍이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 고찰이란다.
사찰은 쌍 곡 계곡방향으로 한창 달리다, 다시 깊은 산으로 기어오르는 청화산 높은 산중에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나 가파른 곳인지 기어 1단을 놓고도 엉금 거리며 가야하는 길ㅡ
그것도 중간지점에서 빗장이 걸려있어 도보로 가야만 했는데, 아마도 한 시간 가까이 소요 됐을 것이다.
안내하던 문 여사는 다리가 아프다고 혼자 먼저 가라고 권했지만, 혼자 뒤쳐져 온다면 그 팍팍함은 곱절로 힘든걸 알기에 함께 가려니 시간이 더욱 지체되었다.
사찰 입구에 이르니 마치 성벽처럼 높다란 돌담이 둘러쳐있고, 입간판엔 <원효가 다녀간 그 길에 서다>란 글씨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처럼 험난한 산속까지 과연 원효대사가 다녀갔더란 말인가!
그가 다녀갔다는 건 어디까지나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실제 필자가 다녀갔다는 엄연한 사실은 누가 알아줄 것 인지?
사찰에 올라보니 뒤켠엔 학 바위란 예사롭지 않은 바위가 버티어있고, 넓은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더없이 시원하다.
학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약수도 나그네 갈증을 풀어주기에 족했다.
E T스님으로 알려진 혜진 스님은 마침 예불 중이었다.
한 창 후 예불을 마치고 나오더니 손님 대접하겠다고 천도복숭아를 내놓으며, 점심 공양을 해 드리겠다고 공양 간으로 들어갔다.
이에 문 여사가 자신의 집에 가서 준비한 국수를 먹자고 하니 지체 없이 선뜻 따라나섰다.
혜진 스님은 선승이지만 퍽 호쾌하며 흥미로운 인상이었다.
식사를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가졌는데....
우선 이름 때문에 가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전한다.
불자 중 여성신도들로부터 자신의 법명을 대면 여자가 아니냐고 물어오기도 하고, 혜진 이란 이름을 가진 여성한테선 자기 이름이 혜진 인데 놀리려고 그러느냐는 전화를 받을 때도 있었다는 것.
혜진 스님을 E T 스님이라 하는 데는 얼굴인상이 영락없는 E T를 닮았다고 해서 세라 모녀가 붙여드린 별명이다.
내가 보기엔 E T보다도 어쩜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 같다는 생각이 짙게 풍겼다.
암튼 혜진 스님은 특이한 이미지가 무척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러기에 대화도 퍽 부드럽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나눌 수 있어 편했다.
대화의 화두는 “행복”ㅡ.
깊은 산중에서 수도하는 선승에겐 어떤 게 가장 행복할 것인가?
불자라면 누구나 방하 착(放下 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념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 각자(覺者), 즉 참된 자아인 진아(眞我)에 이르러 성불하는 길이 최고의 목적이다.
혜진 스님은 선승답게 세상적인 욕심 따윈 초월한 듯싶었다.
불교계 많은 스님들이 권력과 명예, 물질 욕에 눈이 어두 어 벼라 별 추태를 보이는 그런 모습과는 질적으로 확연이 다르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혜진 스님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가 나온다.
매끼 식사 때마다 식사걱정 않도록 해줄 공양주보살님이 있다면 7,80% 걱정을 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 주문은 매우 절실한 현실적 바람일 것이다.
너무 깊은 산중에 있다 보니 공양주보살도 없이 손수 식사준비를 한다는 게 얼마나 고충이 컸었겠는가!
이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이 말은 우리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란 육신과 정신적 욕구가 동시에 충족되어야한다는 엄연한 사실의 증명이다.
E T스님도 이런 점에서 육신이 추구하는 현실적 행복을 외면하거나, 그 행복의 굴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만나본 지개야 스님은 역시나 독특한 인물이었다.
안성 칠장 사를 찾아가던 도중에 <묵언마을>이란 글씨가 눈에 띈다.
칠장 사는 예전엔 아미산이라 불리던 칠현 산 산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이 사찰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려온다.
고려시대 왕사를 지낸 혜소국사의 도둑들을 참회시킨 이야기와 왕사 나옹선사가 심었다는 나옹 송 이야기를 비롯하여 임꺽정 이야기와 어사 박문수의 <夢中 登科 詩>가 전해지고, 선조의 두 번째 왕비였던 인목왕후와 얽혀진 이야기도 흥미를 더해준다.
묵언마을은 바로 칠장 사 얼마 못 미쳐 한적한 농촌들녘에 자리한 사찰이름ㅡ
사찰이름엔 말미에 의례 寺나 庵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마을이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내걸게 된 것은 묵언으로 면벽수도를 한 달마대사를 시조로 하는 선불교의 최고 선(禪)인 ‘黙言’에다 거짓이 없는 진실만 오가는 고향마을의 마을이 합해진 이름이란다.
묵언마을은 안으로 들어가면 아리송한 글씨들이 여기저기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전면에 <그냥 어떠리>라고 새긴 글도 그림인지 글씨인지 알쏭달쏭한 글씨체가 이채롭다.
글씨뿐만 아니라 흙벽으로 지은 초가집과 오밀조밀 조성된 조형물들도 역시 예사롭지 아니한 예술성 높은 작품들이다.
옛날 시골에서 사용하던 맷돌이며 항아리들이 즐비한가 하면, 괴이한 장승들도 곳곳에 서있고. 대웅전처럼 2층 구조의 웅대한 건물 안에도 희귀한 조각품이 가득할 정도....
주인장이 없는 동안 이곳저곳 두루 살펴보고 밖으로 나오려던 차에, 주인장되는 지개야 스님을 비로소 만났다.
차를 대접하겠다고 내실로 정중히 안내한다.
손수 담근 솔잎차가 향긋하게 향기롭다.
명함을 건넸더니 자신이 저술한 두 권의 소책자에 지개야(祉丐也)라는 사인을 담아 정표로 건네준다.
지개야 라는 법명도 스님들이 되느니, 안 되느니 옥신각신한 후에 법명으로 사용된 이름이라고....
그의 이력은 참으로 다양했다.
안동 갈라 산촌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후 “사람은 전깃불 밑에서 수돗물을 먹고 살아야한다”는 선배의 말에 넌 링과 반바지차림으로 무작정 안동시내로 가출하여 노숙신세에서 얻어먹는 거지생활과 구두닦이, 신문팔이, 식당종업원, 막노동과 가축병원 조수 등으로 온갖 인생 밑바닥생활을 거쳐 고학으로 대학에서 자연과학, 경영, 행정, 철학, 심리학 등을 두루 공부한 후 농, 축협에서 임원직으로 근무하다 경북도의원, 국회의원보좌관등의 정치일선에서 일한 바도 있단다.
지나온 과거사를 듣다보니 내가 걸어온 길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출세한 만큼 나는 출세를 해보지 못한 내용만은 빼놓고, 고난 길을 걸어온 인생경력은 너무도 흡사하기에 대화가 더욱 잘 통했다.
그가 사회에 공헌한 일들도 꽤 많았다.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폐수로 골치를 앓을 때, 축산오물을 비료로 만들어 사용토록 한 일에서부터, 소 값 파동으로 축산농가가 빚더미위에 시름할 때, 서울 강남에 <안동 한우 촌>을 만들어 소 값 파동을 잠재우기도 했고, 명절 때면 주부들이 명절 증후군으로 시달리는 문제가 이슈화될 때는 이를 긍정적으로 이해시키는데 앞장서기도 했단다.
우리가 소고기를 부위별로 말하는 <꽃 등심>이나 <차돌박이>같은 이름도 모두가 자신이 지어낸 이름이란다.
지개야 스님이 가장 역점을 두고 펼치게 된 일은 자살방지운동ㅡ
그가 묵언마을로 들어온 동기 자체가 바로 이런 역점사업을 해보겠다는 꿈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2004년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가, 노무현 탄핵정국의 파편을 맞고 패잔 병이된 후, 죽어가는 한사람이라도 살리는 길도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출가를 결심하여 부안 백련사의 성 수종스님을 은사로 승려의 길에 들어섰단다.
그는 단 한 푼의 보시도 받지 아니하고 순전히 자신이 번 돈으로 묵언마을을 조성했고, 묵언마을을 건립하는데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가 하면, 자기 전 재산 약 40억이란 거액을 쏟아 부었다고 밝힌다.
묵언마을을 건립하여 인간사표를 쓰려고 자살을 각오하던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긴 하였지만, 이러는 동안 아내도 자기 곁을 떠나버렸고, 이해 못하는 여러 사람들의 오해도 있었던 듯싶다.
그는 내가 자유여행을 한다는 소리에 재빠르게 추임새를 넣는다.
바로 자기도 이젠 그걸 해보고 싶다며 동행하여 여행길을 함께 걷고 싶단다.
자기는 사찰을 짓던 일로 만족을 하고 싶고, 이젠 모든 걸 내려놓고 훌훌 자유로이 세상구경 두루 하면서 거기에서 새로 인생길을 걷는 그런 날을 어서 빨리 갖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다.
금번 여행길에서 뜻밖에 만나본 3인의 도인들ㅡ
모두가 보여 지는 색깔들은 다소간 달랐지만, 내면의 추구와 바라는 이상은 서로 상통할 수 있는 요소들이 다분함을 느꼈다.
도의 길을 걷는 사람치고 평범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인생의 극과 극을 달리던 사람들과, 세상눈으로 보면 돈키호테나 기인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이 도인들이다.
여행은 산수자연만을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와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며, 그러다보면 뜻밖에도 좋은 인연들을 맺게 되는 것도 여행의 선물.
그러기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언제든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며, 인연 따라 추억을 더듬어 보며 어디든 자유로이 달려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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