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근황은 어떠신지.
성현국 동문(이하 성): 근황이라…. 지금 둘째를 가졌고, 일은 항 상 바쁜 편이에요. 인터뷰 한다고 해서 머리를 잘랐는데, 마음에 안 들게 됐네요. 주말밖에 시간이 없어서 오늘 오전에 급하게 잘랐더니.
박지혜 동문(이하 박): 학교는 늘 돌아가는 게 비슷해요. 1학년 담임을 하느라 애들이랑 씨름하며 보내고 있어요. 일과 살림을 병행하고 둘째를 임신 중이라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요.
두 동문이 기억하는 학교 모습은 어땠나요.
박: 처음 입학할 때만 해도 무척 휑한 느낌이었어요. 아산캠퍼스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생활관 AㆍB동 외에는 건물이 공대, 자대, 인문대 딱 3개밖에 없고, 나무도 많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내가 다니는 학교라 그런지 나름 운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공대에서 바라보던 노을이 무척 예뻤죠. 지금은 트라팰리스도 생기고 건물들이 들어서서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모습이 됐지만요.
성: 저도 같은 추억을 느끼고 있어요. 참, 그리고 자대 앞 호수 옆에 컨테이너 동아리방들이 늘어서 있던 기억도 나네요.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성: 공부만 열심히 했죠.
박: 거짓말!(웃음)
성: 사실은 동아리 활동을 가장 열심히 했어요. 1학년 때부터 찬양동아리 다울에 가입해서 활동했죠. 축제 때 노래 부르고, 공연도 많이 다녔고요. 그러다 제가 회장, 이 친구가 총무를 맡아서 열심히 동아리를 이끌기도 했죠. 동아리를 하면서도 다들 공부를 잘 했어요. 특히 아내를 비롯해서 영어과 여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평점 4.3, 4.5를 넘나들며 날아다녔죠. 남자애들도 한다고는 했는데 못 쫓아갔어요. 동기 중 한 명이 화공과 1등이었는데도 동아리에서는 꼴찌일 정도였죠.
박: 학창시절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기숙사 생활도 재미있게 하고. 또 학교 행사도 여기저기 참여했죠. 이것저것 열심히 하면서 후회 없이 재밌게 보냈던 기억이 나요. 친구들과 즐겁게 지낸 것도 기억에 남고요. 공연 다니면서 동아리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친한 친구들과 밤새 기숙사 방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했죠. 3학년 때는 과감하게 1년간 휴학하고 토익, 토플, 통번역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학원을 수강하며 영어 공부에 힘 쏟았어요. 이때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고, 좀더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Love Story in 선문.
기자: 누가 먼저 좋아하시게 된 건가요?
성: 제가 먼저 좋아했어요. 친구일 때부터 좋아했지만 고백도 제대로 못했었는데도 알아주더라고요. 3학년 때 둘 다 휴학하고 1년 뒤 복학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사귀게 됐어요.
박: 신랑이 동아리 회장을 맡아서 이끌어나가면서 힘들어 할 때도 많았어요. 그럴 때 동기로서 옆에서 도와주고 하다 보니 가까워지게 됐죠. 불 같이 타오른 사랑은 아니지만, 친구로 지내면서 객관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됐거든요.
기자: 어떤 점이 좋으셨나요.
박: 곁에서 친구로 바라보니 꿈과 목표가 확실하고 책임감 있고 믿음직한 면이 좋았어요.
성: 저는 그냥 다 좋았어요. 재고 따질 것 없이 다 마음에 끌렸거든요.
박: 고마워, 그렇게 얘기해줘서.
기자: 데이트는 어떻게 하셨죠?
성: CC(캠퍼스 커플)이다 보니 주로 빈 강의실이나 쉼터에서 데이트를 했어요. 또 체육관 앞 호수를 따라 걷거나, 기숙사 뒤 탕정초등학교 쪽 시골길을 왔다 갔다 하며 손 잡고 걸어 다녔죠. 당시만 해도 그 쪽이 상당히 운치가 있고, 사람도 많이 지나다니지 않았거든요. 학교에서 주로 데이트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비밀로 하고 사귄다는 게 2달 만에 들통이 났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박ㆍ성: 복학하고 나서 사귀게 됐는데, 왕고(왕고참) 선배들끼리 사귄다는 게 한참 어린 후배들 보기 쑥스러워 비밀로 하고 있었어요. 여럿이 있을 때는 표를 내지 않으려고 했죠. 그런데 하루는 동아리활동을 마치고 다 같이 귀가하다가 공대를 돌아가면서 둘만 남게 돼 손을 잡고 걸었는데, 다음날 동아리에 다 소문이 나고 말았어요. 평소부터 수상한 낌새를 차린 후배들이 뒤에서 따라오며 미행을 한 거였죠. 많이 당황한 기억이 나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교수님은.
박: 허준 교수님, 콜포드 교수님 등 다른 분들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윤성규 교수님이에요. 제게 교사의 꿈을 심어주셨고, 지금까지도 저의 멘토가 돼주시는 분이거든요. 상담을 해주시면서 구체적으로 길을 제시해주시기도 하고, 제 능력보다 높이 평가해주셔서 항상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해주셨죠. 학생들을 마음으로 사랑해주시니까 저도 지금까지 마음으로 기대고 있어요.
성: 많은 분들이 있겠지만 지도교수님이셨던 김종희 교수님과 하재룡 교수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김종희 교수님은 저를 참 많이 아껴주시고 항상 좋게 봐주시곤 했어요. 또 하재룡 교수님은 4학년 때 처음 수업을 들었는데, 늘 잘한다고 격려해주시고 또 제가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에도 많이 챙겨주셨어요. 하재룡 교수님께는 졸업 후 두어 번 찾아갔는데, 김종희 교수님은 그때마다 연구실 문이 잠겨있어 인사드리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졸업 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성: 제대한 뒤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4학년이고 아내는 대학원 다닐 때, 둘 다 무직인 채로 결혼했어요. 졸업 후에는 곧바로 신림동 고시촌에 가서 행정고시를 준비했는데, 정보나 공부 수준 차이에 좌절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마음을 굳게 먹고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니면서 2년 계획을 세우고 차례차례 실행해나갔어요. 학원 선생님이나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친해지고요. 아내가 고생했죠. 대학원 다니면서 과외 하랴, 공부 뒷바라지 해주랴. 다행히 아내가 대학원 졸업 후 바로 사립 고등학교에 채용이 되고, 그 해에 저도 시험에 합격했어요. 힘든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박: 졸업 후 곧바로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학부시절 외국 한번 못 가본 게 아쉬워 매일경제 인턴십 프로그램에 신청했고, 다행히 선정돼 대학원 입학금만 내놓고 바로 미국으로 떠났어요. 한 학기 동안 그렇게 바랐던 외국생활 경험하고 돌아오니 자신감도 생기고, 마음속이나 머릿속이 풍요로워졌죠. 대학원에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조교와 아르바이트 등 일 했죠. 대학원 졸업할 때쯤 운 좋게도 지금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 공채가 나와 도전하게 됐고, 지금까지 계속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성: 국무총리실 기획총괄팀에서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무관은 5급 공무원으로서 주로 국가정책 기초안을 잡고 계획을 수립하는 일을 합니다. 이렇게 작성한 초안을 토대로 정책 결정권을 가진 상부에서 실행여부를 결정합니다. 지금 현재 맡은 다수의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현안은 세종시 프로젝트인데요, 연기군 세종시에 내려갈 중앙 행정기관을 총괄 지원 및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박: 저는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다들 중ㆍ고등학교를 다녀봐서 알 수 있듯, 수업과 학급관리가 주된 업무입니다. 영어수업 방식은 예전 우리 때와는 많이 달라졌어요. 학년별로 학생들을 5개 반으로 나눠, 수준별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급관리는 학생들의 생활을 지도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도움을 주는 것이고요.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성: 어렸을 때부터 공무원을 생각했어요. 정치에 대한 꿈이 있었거든요. 아무런 배경이 없는 제가 어떤 방법으로 정치에 진출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중학교 때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중에서도 정통 공무원의 길을 걷고자 행시를 생각하게 됐고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죠.
박: 사실 영어학부에 입학하면서도 막연하게 영어로 뭔가 전문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몰랐어요. 통번역사를 꿈꾸기도 했지만 원어민 수준의 해외파들 사이에서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요. 그런데 열성적으로 학생들을 이끌어주시는 윤성규 교수님을 보면서 저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4학년 때 교육의 뜻을 품게 됐죠. 조금 늦은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교수님께 많은 격려를 받고 교육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됐어요.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와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박: 교사로서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아요. 더군다나 아직 성숙하지 않은 사춘기 아이들과 소통하는 건 더욱 어렵죠. 요즘 체벌금지로 말이 많긴 하지만, 10대 때는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는 만큼 가능하면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의 권위를 앞세우면 절대 다가오지 않고, 진솔하게 터놓으면 받아들여지거든요. 그렇게 한 해, 한 해 노력하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 생기고 있어요. 초기에는 “선생님 덕분에 영어가 재밌어졌어요”, “점수가 올랐어요” 하는 말이 기뻤는데, 이제는 결손가정이나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이 참다 참다 제게 와서 고민을 말해줄 때 가장 기뻐요.
성: 선생님이 좋은 것 같네요.(웃음) 저는 아직 일한 지 얼마 안 돼, 그저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분투하고 있어요. 물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보람은 있죠. 또 내가 기획한 일이 실제로 이행되면 무섭기도 하지만 제대로 구현이 되면 무척 보람차요. 하지만 사무관은 일이 많아 늦게 끝날 때면 육아나 가정생활을 하기 힘들다는 점이 어려운 점이죠.
연봉과 직급은 어떻게 되시나요.
성: 제 직급은 사무관으로, 5급 공무원입니다. 급여는 연봉으로 받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3천5백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박: 교사는 7급 공무원에 해당하고요, 마찬가지로 연봉제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2천5백에서 3천 사이인 것 같아요.
성: 공무원이 외부에서는 선호하는 직종이고 맞벌이긴 하지만, 애 키우는 데 들어가는 것을 이것저것 따져보면 부족하게 느껴져요. 특히 학교 선생님은 정규수업 외에도 보충수업, 특강 등 부수적인 일이 많은 것을 보면 생각보다 박봉이라고 느껴져요.
교사과 5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박: 선생님이 되려면 교직이수과정이 있는 학과 또는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교직이수자격증을 취득해야 해요. 그런 다음 공립학교라면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사립학교라면 학교별 공채시험을 준비해야죠. 임용고사 1차에 합격하면 2차로 시강을 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종 합격여부가 가려져요. 사립 공채시험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공채가 날 때를 기다려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거친 뒤에야 채용될 수 있어요. 또 교사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경험을 많이 쌓아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성: 행정고시는 총3차로 이뤄져있습니다. 1차 시험인 PSAT는 수능과 비슷한 객관식 문제로 이뤄집니다. 전문지식이 아닌 기초 소양을 물어보는 문제죠. 2차 시험에서는 정치학ㆍ경제학ㆍ행정학ㆍ행정법ㆍ정책학 5과목을 서술형으로 봅니다. 예전에는 1차를 붙으면 다음해까지 시험볼 수 있는 유예기간이 있었는데, 요즘은 제도가 바뀌어 1차와 2차를 병행 준비해야 합니다. 또 3차에서는 심층면접을 봅니다. 6명이 조를 이뤄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개인 프레젠테이션, 대인면접까지 점수를 합산해 최종 합격여부가 밝혀지죠. 3차에서는 조별로 6명 중 1명이 떨어지게 됩니다.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도 특별히 조언을 주신다면.
성: 학원이나 고시원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이에요. 고시생이 많은 학교라면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서울의 몇몇 학교를 제외하면 고시학원을 다니는 게 좀더 유리하죠. 또 7급이나 9급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5급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한번 도전해봤으면 해요. 7급은 사실 경쟁률도 훨씬 높고, 객관식은 모든 것을 확실하게 외우고 있어야만 풀 수 있잖아요. 그런데 5급은 주관식이라 채점자의 이해방식과 견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거든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업무 기회도 많고요.
두 분 모두 매우 바쁘신데, 가정을 관리하는 데 애로사항은 없으신지.
박: 맞벌이다 보니 어려운 점도 많아요. 애기도 낮 시간에는 아주머니께서 봐주시고요. 저도 빨리 오면 5, 6시이고 신랑도 빨리 와야 7시인데 애는 8시면 잠드니 그럴 때마다 너무 미안하죠. 그래도 주말에는 가능하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애써요. 마트, 백화점이나 공원 등 가까운 곳이라도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요. 또 육아할 때 엄마, 아빠가 나눠서 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신랑이 많은 부분을 도와줘서 늘 고마워요.
바쁘신 중에도 학교를 자주 찾으시는 등 학교 사랑이 대단하신데 비결은.
박: 부모님의 영향이 커요. 저희 부모님도 우리학교 출신이신데다, 같은 학번 동문 부부시거든요. 그래서 학교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으셨어요. 또 대학교 2학년 때 부모님께서 내려오셔서 학생회관에서 문구점을 하셨어요. 저도 가게 일을 도와드리곤 했는데, 학교 다닐 때 부모님이 옆에 계셔서 더 힘이 됐죠. 특히 엄마가 애정이 각별하셔서 동문회 부회장을 맡고 계신데, 저도 동문 걷기대회에 매년 참가하고 있어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성: 연수원에 처음 들어갔는데, 동기 3백 명 중에 우리학교 출신이 한 명도 없어 무척 외로웠어요. 일과가 끝나면 같은 대학 동문들끼리 뭉치고 회식도 하곤 했는데 저는 혼자 슬퍼하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죠.(웃음) 그래서 중앙부처에 후배들이 많이 들어와 줬으면 해요. 그럼 동문 모임을 꼭 만들어서 후배들을 잘 챙겨주고 싶네요.(웃음) 그러려면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해야 해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마음을 굳게 먹고 힘든 것도 잘 이겨내시길 바라요. 하지만 공부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하시길 바라요. 저도 행시 3차 면접에서 동아리를 안 했다면 할 말이 별로 없었을 거예요. 공부에 대해서는 안 물어보고, 공부 외에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몰두해서 했나를 물어보거든요. 그러니 취미나 동아리를 하나쯤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박: 우리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서로 꿈꾸던 직업을 가졌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중이에요. 후배들도 어떤 위치에서든 노력을 이어갔으면 해요. 그래서 선문대를 나와서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선례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행운, 그것은 노력하는 사람의 특권이다’라는 말이 있죠. 자기에게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니 미리 준비해야 해요. 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학창시절을 확실히 즐겼으면 해요. 맨날 놀기만 해선 안 되겠지만. 후회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취미나 동아리를 갖는다면 졸업 후 일을 하면서도 돌파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게 삶을 풍요롭게 해줄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
박: 항상 영어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요. 공부할수록 더 잘하고 싶고, 그 갈증은 쉽게 채워지지 않아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가서 제대로 공부도 해보고 싶고,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도 습득해오고 싶어요. 그렇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더 생생하게 가르치고 싶어요. 또 아이들과의 관계를 더 깊이 잘 이해해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성: 1째도 아들, 2째도 아들이라 3째로 딸을 갖게 될 때까지 낳을 거구요, 선문대 동문 중앙부처 모임을 꼭 만들 거구요.(웃음)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죠. 나로 인해서 선문대생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으면 하거든요. 나중에 후배들이 들어왔을 때는 출발점부터 좋게 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이언아 기자 ionize@sunmoon.ac.kr
손진영 사진기자 withperr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