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뜻길따라 구만리 !!~

컨텐츠 정보

본문

1800홈에 상주하면서 본글로 댓글로 심심한 영의 양식을

부어 주시고져 몸부림 치시던 이무환 목사님께서 일선목회를

떠나신다니 여러 생각이 스쳐간다.

처음 통화했을때 어떻게 그렇게 앉으나 서나 열정적인 심정의

횃불을 드시냐고 질문을 드리니까?

목사님 왈 내가 성화때 부터 신앙하면서 첫 감동과 영광을

그대로 안고 사신다고...

일선에서 오랜 공직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가족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화목이 하늘앞에 큰 영광이

되소서 ~!

관련자료

댓글 5

대숲님의 댓글

(이)제 비들기가 아닌 새의 제왕 독수리되어 공중을 평정하고 (무)적의 해적선되어 평화의 바다로 평정하여 (환)히 웃음짓는 평화의 왕 천지인 참부모님 용안을 만드소서! 아주!!!

안상선님의 댓글

가까이에서 몰랏던 형제의 소식이 멀리서 메아리로 오는군요.
뜻앞에 충성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邁進 한다면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실적의 주인공이 되리라 믿습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오매불망 오직 외길만을 걸어오신 목사님 보다 높은 정상을 향하여
못다한 꿈 꼭 이루어 주시 옵소서.
심도 깊은 본연의 세계를 생각하며 목사님의 몫을 당당하게 정진하리라
믿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 3.[이화에 월백하고] -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데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냥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 (1268-1343) ;
고려시대의 문신. 1306년 왕유소 등이 서흥후 전을 충렬왕 후계로 삼으려 하자, 최진과 충렬왕을 보필했다. 심양왕 고의 왕위찬탈 음모를 원나라에 상소했다. 충혜왕 복위 후 정당문학, 예문관대제학이 되어 성산군에 봉해졌다. 시문에 뛰어났다.

본관 성주(星州)
호 매운당(梅雲堂) ·백화헌(百花軒)
별칭 자 원로(元老), 시호 문열(文烈), 성산군(星山君)

본관 성주(星州). 자 원로(元老). 호 매운당(梅雲堂) ·백화헌(百花軒). 시호 문열(文烈). 1294년(충렬왕 20) 진사로 문과에 급제, 안남서기(安南書記)가 되고 예빈내급사(禮賓內給事)를 거쳐 지합주사(知陜州事) ·비서랑(??書郞)을 역임하였다. 1306년 비서승(??書丞) 때 왕유소(王惟紹) 등이 충렬왕 부자를 이간시키고 서흥후(瑞興侯) 전(琠)을 충렬왕의 후계로 삼으려 하자 어느 파에도 가담하지 않고 최진(崔晉)과 충렬왕을 보필하였으나 이에 연루되어 귀양갔다. 그 후 풀려나와 1313년간 고향에서 은거했고, 심양왕(瀋陽王) 고(暠)의 왕위찬탈 음모를 원나라에 상소하였다.

1230년 충숙왕 귀국 후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고 전리총랑(典理摠郞)을 거쳐 군부판서(軍簿判書)에 승진, 수차 원나라에 다녀왔다. 1240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르고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이 되어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왕의 음탕함을 간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이듬해 사직, 후에 성근익찬경절공신(誠勤翊贊勁節功臣)이 되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시조 l수가 전한다. 공민왕 때 성산후(星山侯)에 추증, 충혜왕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이무환님의 댓글

감사 감축 진심으로 과움과 감사랄 표하오며 ,,,
이시대 천복궁 섭리가 너무나 중차대하여
보다 차원 높은 정상에서 더욱더 정성 쌓고 협조 협찬하며

크나큰 실적의 주인공적 사명을 하기위한
간절한 심정권의 분출이오니 양지하시와

약 3개월만 지켜 보시면 희망찬 열매거..
오로지 정상을 향하여 합장 축원 아주,,,,

가정회 은행계좌

신한은행

100-036-411854

한국1800축복가정회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