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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추억을 가정 형제들과 공유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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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8월 29일 내가 소속 된 부천교회 식구 4명과 김포교회 식구 3명은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목적지인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운 시각인데도 마중 나온 현지 식구들과 감격스런 상봉을 하였다. 생전 본적이 없는푸른 눈의 이국 형제들인데도 우리들은 서로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고 마치 오래 동안 떨어져 지내던 동기를 만난듯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승합차와 승용차 2대로 30~40분을 달려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교회에 여장을 풀고 각자 2~3명씩 배정된 방으로 옮겨 첫날 밤을 보냈다. 깨끗하고 그런대로 운치가 있는 3층의 큰 주택을 숙소 겸 교회로 쓰고 있었다.

이곳 폴란드는 원래 한국, 미국, 일본, 이태리 이렇게 4개국의 국가 메시아가 내정되어 있었는데,미국의 국가메시아는 흑인으로 미국에서 공적인 할동을 하고 있으나 프랑스 출신인 부인"클리븐 아모스베아트리스" 는두딸(15세와 17세)과 함께 벌써11년째 폴란드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어려운 삶을 살고 있고, 이태리 출신의 국가메시아 "안토니오 피오레"역시 북부 폴란드의 항구 도시에서 11년째 자녀를 키우며 교회를 맡고 있었다. 또 한 일본의 국가메시아는 상주는 아니나 자주 들려 교회를 돕고 있으며 마침 그 때에는 부인이 미리 와서 활동하고 있었다. 오직 한국의 국가 메시아만 아직 한번도 온 적이 없고 누군지도 몰라 내심으로 매우 서운해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측 국가 메시아는 이미 작고하신 전 통일중공업주식회사의 고 문성균 회장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폴란드 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영계에 가 계신 문성균 회장께서는 생전에는 국가 메시아의 가치를 잘 몰랐다가 늦게나마 나를 통해 폴란드를 꼭 가고 싶어 하시겠구나"....

사실 우리는 생전에 서로 얼굴을 기억하는 정도 외는 별로 친밀 관계가 없었다. 다만 내가 마지막 통일중공업의 사장직을 수행한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폴란드 파송기간 내내 고 문회장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일과는 매일 새벽 훈독회와 각자 느낀 바 활동보고, 청소, 아침식사 후 시내 중심가에 있는 전시회장으로 나가 전단지를 돌리며 9월 4일 날로 예정된 빅토리아 호텔에서의 콘프런스에 참여 서명 받기, 그리고 어두워져서 귀가 하는 일이었다.


새벽 훈독회는 3그룹으로 나누어져 한 팀에서는 현지어인 폴란드어로, 또 한 팀에서는 일본 식구들끼리 일본어로, 또 다른 한 팀인 우리 한국 식구들이 한국어로, 진행 하였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또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전시장에서의 활동은 전시장 앞에 있는 큰길가로 나가서 현지에 활동하러 온 일본 식구들과 함께 전단지를 돌리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선별하여 전시장으로 인도 하면,전시장에서 대기 하고 있던 폴란드 식구들이 폴란드어로 전시장을 돌며 설명하고 대회 참석 서명을 받는 일이었는데 영어도 현지어도 잘 못 하는 한국 식구들의 열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폴란드 식구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을 뿐 아니라, 어떤 때는 인도 되는 시민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 설명할 장소도 강사도 모두 부족하여 대기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 거리에서의 활동을 조절하기도 하였다.

폴란드 사람들의 대체적으로 중후한 인상과 순수성은 잘난 척 하는 서구 사람보다는 훨씬 정감이 갔다. 아마도 나치 독일과 구소련 등 주변국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살육 당한 고난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와 어떤 동질감의 애착을 갖게 하는지도 모른다.


9월 2일 일요일 예배 때에는 그곳 목회 책임자인 “마릭”과 6000가정으로 그곳에서 맏형 노릇 하고 있는 “가고”씨의 요청으로 갑자기 설교 말씀을 부탁 받았다. 아마도 내가 한국에서 온 제일 연장자 이고 1800가정으로 선배 예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설픈 회화 실력으로 틈틈이 대화라기보다도 눈물을 앞세워 보석처럼 빛나고 어리지만 정겨운 현지 식구들을 보듬고자 했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한 탓인지는 모르나 여러 사람들이 한국의 국가 메시아가 김 선생을 통해 오신 것 같다고 증언해준 것이 주효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밤 세워 준비한 말씀 내용은 나의 간증을 요약한 것으로, 첫째는 말씀의 위대성을 강조 한 것이고, 둘째로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며 구원섭리의 동기인 하나님의 심정과 참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는데 이날의 예배 분위기는 일부 우는 식구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상기되고 대단히 은혜로워서 예배 후에도 많은 식구들이 내손을 붙잡고 말을 걸어 왔다. 이런 분위기가 연출 될 수 이었던 것은 배후에 나보다도 더 열심히 전자사전을 찾아가며 통역을 준비한 2세 가정 이중엽군의 수준급의 화화 실력과, 나로 하여금 폴란드 식구들을 향한 연민의 정을 물씬 느끼도록 배후에서 역사하신 참부모님의 지극 하신 사랑이 있었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오후에도 전시장으로 나가 활동에 주력하였음은 물론이고 대회 당일에도 우리 한국식구 일행은 오후 2시까지 전시장으로 나가 오늘에 있을 대회를 마음 조리며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약속 시간이 되자 이곳 빅토리아 호텔(작년에 참어머님께서 대회 한 장소)에는 서명했던 바르샤바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 들어 곧 정해진 좌석을 가득 메웠다. 곧이어 성주식과 성화식이 거행되고 “가고”씨의 대회사에 이어 초청 연사인 기독교회의 목사와 톨스토이전공 교수의 강연에 이어 오늘 말씀선포의 주인공이신 참아버님의 소개를 내가 준비한 영문 원고로 낭독하고 폴란드 식구가 현지어로 통역하는 순서를 거쳐 말씀 선포가 끝나기 까지 족히 3시간이나 걸렸지만, 많이들 자리를 지키고서 그 뒤에 연달아 진행된 한국과 폴란드 평화 대사 자매결연 식까지 지켜보며 영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식사도 제공 되지 않는데 커피 한 잔으로 이렇게 4시간 가까이 버틸 수 있는 폴란드인의 끈기는 우리의 상식적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역사가 아니면 이렇게 흐뭇한 승리를 어찌 우리의 힘만으로 가능하겠는가?

다음날 9월 5일은 하루를 틈내어 남부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보고 귀가 길에 폴란드 제2의 도시 크라프트에 들려 그곳의 폴.한 가정으로부터 베트남식 정찬을 융숭하게 받으며 또 다른 그리움의 회포를 풀고 바르샤바로 돌아오니 자정이 훨씬 지나고 새벽2시가 다 되었다.

9월 6일 새벽 눈을 붙이는가 마는가 하며 7박8일 간의 폴란드 일정을 마감하고 서둘러 독일 프랑크프르트로 가기 위해 바르샤바 공항으로 갔다. 9월 7일 날 있을 현진님의 대회참석을 위해서다. 저가 항공편을 고른 탓에 좀은 고달펐다. 프랑크프르트에 도착하여 숙소 문제와 일정도 상의할 겸해서 그곳 교회 관계자와 수차례 전화 시도도 했지만 그냥 마음 편하게 시내 중앙역 근방에서 한국인 교포가 운영하는 민박을 이용하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는데 아침식사를 포함하여 하루 25유로의 가격은 부담도 적었지만 음식 솜씨와 분위기도 좋아 모두 만족하였다.


다음날 9월 7일 우리 일행 7명이 대회장으로 알고 찾아 간 곳은 대회장이 아닌 현진님 숙소였다. 우리가 호텔 입구에 도착한 바로 그 순간 현진님 일행이 대회장소로 가시기 위해 호텔 정문을 나서시는 게 아닌가? 너무나 갑작스러운 조우와 반가움에 청하신 악수까지 하고선 서둘러 수행원 차량에 편승하여 현진님 뒤를 좆아 대회장으로 가는 데는 족히 30분 이상이 걸렸다. 나는 차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에 우리가 10 여초만 늦게 이곳에 도착했거나, 1분 정도 빨리 와서, 이 곳이 대회 장소가 아님을 발견했더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이국 도시를 우왕좌왕 묻고 헤매고 다녔을 게 뻔하다. 생 고생도 생 고생이지만 폴란드에서 서둘러 이곳 프랑크푸르트에 온 목적이 상실되고 말았을 것이었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닌 고 문성균 회장님의 영적 협조였으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날 현진님 집회는 대성공이었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으나 나로서는 현진님의 당당하고 자신에 찬 모습과 청중을 휘어잡고 압도하는 무대 위에서의 능력 뿐 아니라, 무대 아래로 내려가 약간 서먹서먹하던 청중들을 무작위로 한 사람씩 불러 세우시고 말을 시키시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동화해 가시는 모습에서 참아버님의 또 다른 모습을 취한 듯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대 승리였다. 대화가 끝나고 일부 관중들은 빠져 나갔지만, 이렇게 많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2세들을 중심한 젊은 열정들이 무대 아래 위에서 또 다른 춤과 노래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마도 밤을 새우려는지-


우리 일행7명은 숙소인 중앙역 인근의 민박집으로 가기 위해 대회장을 나서서 여자2명과 김포교역장은 다른 차편을 이용하여 먼저 떠나고 나머지 4명은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망설이고 있는데 옆을 보니 키 큰 독일 남자와 한국부인이 서 있었다. 말을 걸어보니 남편은 한때 통일중공업 창원공장에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으며 이번 집회 참석을 위해 3자녀와 함께 2~3시간 떨어진 곳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한사코 우리를 숙소까지 바래다주겠다고 고집하는 열성은 부부가 꼭 같았다. 과공은 비례(過恭非禮)라고 감사한 마음으로 숙소까지 오는 작은 승용차 안에서 이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고 통일 문성균 회장의 영적 협조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밤을 끝으로 이번 파송활동의 공적인 일정은 모두 마치는

샘이다. 다음날 토요일 이른 아침 좀 느긋한 마음으로 프랑크 프르트 시내를 가로지르는 마인강변을 따라 이곳 서민들이 벌이는 벼룩시장을 구경 겸 쇼핑도 하고, 오후에는 대학가로 유명한 하이델베르그도 관광하였다. 다음날 일요일엔 프랑크프르트 교회를 찾았다. 한국인 교회 책임자는 현진님 수행 중이라 자리를 비웠고, 일본인 사모와 역시 한.일 가정부부 및 2세 가정 부부와 꼬마들뿐이어서 함께 훈독 예배를 보며 정성껏 마련한 점심을 즐기고 환담을 나누며 기념사진들을 찍으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다음날 기차로 벨기에의 부르셀에 도착하여 민박집에서 일박한 후, 저가 항공료 덕분으로 버스보다 조금 큰 비행기를 타고 암스텔담까지 1시간 남짓 요동치며 비행하여, 귀국하기 위해 3시간 반 정도를 대기 하고 있는데 출국할 때 함께 탑승 했던 금천교회 소속 형제들이 환하게 상기된 얼굴로 이태리 북부의 어느 작은 나라로부터 승전보를 가지고 금의환향하기 위해 또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고 반가와 하고 있다.


9월 12일 오전11시가 조금 지나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니 지나간 13박 14일간의 일정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워 한순간 멍한 체로 “천일국 평화의 왕 천지인 참부모님 억만세”를 목청 아래로 외치고 또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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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김태순님의 댓글

가평에서 직접 말씀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다시 글을 접하니 더욱 은혜스럽습니다.
건강하십시요.. ^^

김동운님의 댓글

정해관 형제는 항상 묵은 정이 배여 있으며, 얼굴 모르는 문정현 자매는 공의를 향한 열정이 고맙기만 합니다.

조항삼 형제는 맨날 몸을 낮추시니 더 어렵고, 이무환 형제는 별로 가까이 지낸 적이 없으나 항상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모두 복 받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무환님의 댓글

1800가정의 대들보요 버팀목의 구심저점이셨던 초대 회장 김동운 형제님의 뜻위한 공식 로정과 순종의 도리와 실적들!! 고 문성균 회장님의 영적 역사가 폴란드를 감싸고 지켜주시는듯 감사의 심정으로 전 일정을 소화하신 님의 행보에 하늘의 축복과 보살피심이 더욱 함게하시길 합장 축원 아주,,,

조항삼님의 댓글

초대회장님 매우 반갑습니다. 섭리의 보폭따라 움직이는
아름답고 장한 추억이 형제의 가슴을 포근하게 하네요.
짧은 여정이었지만 알찬 보람으로 생각됩니다.

현지사정과 짜임새 있는 일정을 정성껏 올려 주시어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문정현님의 댓글

순식간에 13박 14일간의 여정을 동참한 은혜를 나눌 수 있게
안내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교통편의 숙식등 외국에서 이동하면서 대회를 준비하시는 과정이
어려운 일들이 많으셨을텐데...

지나고 보면 말씀에 순종하고 명하신데로 따른 복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보물이 아니지요.
반갑습니다. !~ 폴란드의 국가메시아로 고 문성균 회장님께서도
정성 드려주신 기반이라 생각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천일국 평화의 왕 천지인 참부모님 억만세”를 목청 아래로 외치고 또 외치고 있다.
지금까지 그 심정으로 외치시는 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1년여전 지구촌을 무대로 유감없이 하늘의 새 섭리를 증거하며,
우리 자신들이 감동 받았던 그 은혜와 사랑을 다시 일깨우는 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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