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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일 훈숙님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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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일 훈숙님 설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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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6월 초하루 안시일이고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하는 첫날에 식구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2008년도가 시작된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6월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면서 가속도가 붙는지 세월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부교회에 오면서 본부교회가 마음의 안식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본부교회에 오면 정말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가정맹세를 낭독하고 설교 말씀을 들으면 어떤 거센 세상의 풍파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감싸주는 따뜻하고 포근한 포옹과 같고 말씀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갑옷입니다.

저는 발레를 하면서 세계적인 무대 많이 서봤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무대보다도 오늘 이 자리에 서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본부교회가 참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이 녹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식구들 앞에 서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한 주 예배를 준비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매주 이 자리에 서시는 문형진 세계회장과 이번에 축사장의 사명을 받으신 연아님께서는 얼마나 수고가 많으신지, 또한 각 교회의 제단을 책임진 우리 목회자 여러분들께서 얼마나 큰일을 하고 계신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형진님으로부터 이번 주 설교를 부탁받고 지난 한 달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솔직히 이 자리는 저에게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지난 한 달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는 형진님처럼 목회자도 아니고 평생을 발레 동작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설교를 잘 해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6년 전 발레 현역에서 은퇴한 제가 좁은 단상에서 발레로 제 마음을 표현한다고 해도 별로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주제로 설교를 할까 고민하던 끝에 그래도 제가 잘 아는 발레와 신앙적 삶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1984년 이스트 가든에서 약혼을 하고 인진님 내외분과 더불어 벨베디아에서 조촐하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때의 기억이 어제인 것처럼 생생한데 부모님 가정에 들어온 후로 벌써 2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도 이제 50을 바라보는 아주머니가 됐습니다.

참가정의 며느리 자리는 역사적으로 섭리적으로 너무나도 중요한 사명이 있는 자리입니다. 만약 제가 24년 전에 그것을 알았더라면 저의 부족함을 생각하며 부모님 가정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어렸고, 그저 부모님 뜻에 순정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축복에 임했습니다.

당시 참부모님께서 저를 바라보실 때 얼마나 철없고 부족한 모습이었겠습니까?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지난 24년간 저를 항상 사랑해 주셨고, 믿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 저를 지켜주신 흥진님! 또한 저에게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 주신 참가정! 마지막으로 흥진님 가정을 위해 기도와 정성을 아끼지 않고 모아주신 식구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의 삶을 짧게 요약하라고 한다면 ‘신앙’과 ‘발레’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레를 신앙처럼 연습해야 된다.’는 말이 있는데요. 저에게서 신앙과 발레는 서로 뗄 수 없는 소중한 인생 그 자체입니다.

제가 발레를 시작한 것은 7살 때였습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었고 여동생과 함께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교회 안에 마련된 아주 작은 발레학교를 다녔습니다. 교회 성전에 의자를 다 치우고 발레 연습할 수 있는 봉을 양쪽에 설치하고 발레 교습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운전을 해서 저를 발레 학교로 데려다 주시곤 했는데, 제가 발레를 처음 시작한 학교가 교회였다는 것도 저에게는 아주 의미가 큽니다.

발레 무용수 대부분은 타고난 춤꾼들입니다. 춤을 추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죠. 재능도 그렇고 춤을 향한 열정도 그렇고, 발레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저는 타고난 춤꾼은 아니었습니다. 신체적으로 발레를 위한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것도 아니었고, 무대 위 수백 명 앞에서 대담하게 춤 출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운동신경이 뛰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취미로 발레를 시작했지만 성장을 하면서 발레는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생각과 의지대로 살 수 있었다면 저는 일치감치 발레의 길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는 운명적으로 발레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무용수들처럼 춤을 추고 싶어가 아니라, 신앙으로 인해 저는 발레리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발레리나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신앙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 길을 끝까지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내년이면 25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난 25년 동안 참부모님의 사랑과 은사 그리고 후원으로 유니버설 발레단은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성장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레단이 창단된 1984년도는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죠. 우리나라 발레계는 국제적인 발레계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고, 발레 수준이 너무 낮았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은 발레 불모지였습니다.

당시 춤추는 사람, 더구나 발레리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한국 무용에 비해 발레는 노출이 심합니다. 발레 의상은 몸매가 많이 드러나는 복장입니다. 지금은 발레가 많이 대중화가 됐지만, 84년도에 발레는 생소한 문화였고, 발레리나의 의상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딸에게 발레 교습을 시키시는 저의 어머니도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어머니의 친구 분들은 ‘딸이 발레를 잘 배우고 있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도대체 언제까지 발레 시킬 거야.’라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특히, 어머니는 축복을 앞두고 ‘도대체 발레 하는 며느리를 원하는 시부모가 어디 있을까, 발레하는 아내를 갖고 싶은 남자가 어디에 있을까’라는 생각에 고민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발레에 대해 찬성하셨지만 어머니는 제가 발레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문제로 두 분이 서로 다투는 일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부모님은 참부모님께 이 문제에 대해 여쭤보자고 했습니다. 당시 참부모님께서는 워싱턴에 오실 때마다 저희 집에 머무셨습니다. 그래서 경배식을 마치고 저의 아버지가 참아버님께 여쭤봤습니다. 그러자 참아버님께서는 문화 중에 ‘발레 분야도 복귀시켜야 한다. 축복 상대자로는 발레를 좋아하는 남자를 찾으면 된다. 계속 발레를 시켜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저는 발레를 계속하게 됐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2년 후 참아버님께서는 발레단을 설립하셨습니다. 발레는 우리의 문화가 아니라 서양문화입니다. 굉장히 많은 예산이 요구되는 예술입니다. 84년도에 창단 됐을 때 ‘도대체 할 일이 많으신데 왜 아버님께서는 발레단을 만드실까’라고 이해하지 못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10년 전부터 서울에서 지방까지 많은 크고 작은 극장이 건축되었고,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기업에서도 경쟁적으로 문화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에서 50석 100석 규모의 개인 극장을 짓고 회사 홍보와 VIP 고객 관리를 위한 문화 접대를 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은 문화적 역량이 풍성해졌지만 참부모님께서 발레단을 창단하시던 1984년에는 문화예술이 그야말로 블루오션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도 문화예술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때였는데 참부모님께서는 발레단을 창단하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정말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이셨습니다.

앞서 저는 저의 발레 인생이 운명적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운명은 흥진님의 축복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흥진님께서는 1984년 청춘을 채 꽃피우지 못하시고 17살의 어린 나이에 승화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다 아시겠지만, 당시 아버님께서는 죽음을 각오하시고 승공 대회를 하시던 중이었습니다. 마지막 광주대회에서 아버님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광주대회를 반대했지만 아버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행사를 강행 하셨습니다. 행사가 개최되던 시간, 흥진님께서는 아버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섭리적 탕감조건으로 희생의 길을 가셨습니다. 사고가 날 당시 직접 차를 운전하시던 흥진님은 운전대를 돌려 죽음을 피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타고 있던 2명의 2세들을 살리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흥진님의 참사랑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참부모님께서는 탕감의 고비를 넘으시고 더 큰 승리를 거두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같은 세계적인 천일국 기반을 세우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 식구님들이 참부모님을 뵐 때 마다 흥진님의 영광되고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며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전쟁이 끝나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위해서 국가에서는 참전비나 추모비를 세워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들을 기립니다. 참부모님께서도 흥진님을 기리기 위해서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추모비를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니버설 발레단입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흥진님의 기념사업으로 1984년에 창단되었습니다. 그 때 아버님께서는 'Universal Ballet Company'라는 휘호를 써주셨습니다. 아마 영어로 쓰신 휘호는 이것 하나일 것 같습니다. 발레단이 창단 된 후 ‘백조의 호수’ ‘지젤’ ‘심청’ 등과 같은 모든 공연은 흥진님의 참사랑과 희생을 기리는 공연입니다. 저는 정말 지극한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공연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동안 유니버설 발레단은 우리 교회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발레를 위한 견인차 역할을 했고 한국 문화 수준을 향상시켰습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발레를 우리와 거리가 먼 예술 분야로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40년 동안 발레를 해오면서 발레는 신앙과 닮은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분들이 “What is ballet?” 발레는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저는 발레는 아름다움이다 “Ballet is beauty."라는 답합니다. 발레는 인간의 몸으로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발레를 천상의 언어라고도 합니다. 발레 무용수들은 중력을 벗어나서 하늘을 향해 높이 뜁니다. 여성 무용수들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가려는 듯이 발끝에 올라서서 목을 길게 늘이고 춤을 춥니다. 발레의 움직임을 보게 되면 어떠한 춤보다도 굉장히 고귀하고 순수하고 종적이고 하늘적인 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레 공연되는 작품의 줄거리를 보게 되면 항상 선악의 대결이 잘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영계를 표현하는 발레 작품도 참 많습니다. ‘지젤’이라는 작품만 하더라도 영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지젤은 사랑의 배신을 당해 한을 품고 죽게 되었지만 죽음을 넘어서 끝까지 사랑을 지킵니다. 이 작품은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바로 애승일의 의미와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발레가 신앙하고 비슷한 다른 이유는 발레는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이 아니라 천직이라는 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발레 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목회자들도 그러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레는 천직이다’라는 말은 예술가로서 갖춰야 할 마음자세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또한 목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목회의 부름을 받듯이 발레리나가 춤을 선택한다기보다 춤이 발레리나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무대는 목회의 단상과 같고, 발레리라는 설교 대신에 아름다운 춤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줍니다. 세계적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은 ‘극장은 나에게 성당과 같다. 그래서 극장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항상 성당에 들어가는 기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예술 감독을 역임하신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감독은 저에게 “공연을 보고 나면 마치 마음을 깨끗하게 샤워한 것처럼 느껴져야 된다. 그러나 오늘날은 공연을 보고 나면 집에 가서 샤워하고 싶은 공연이 많아서 문제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발레 공연이 수준 높은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예술적 열정과 정성으로 가득 찬 작품만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며칠 전 TV에서 국립발레단 김주원 발레리라에 관한 스토리가 방영되었습니다. 김주원 씨가 지젤 공연을 하면서 많은 팬레터를 받았는데요, 그 중에서 한 여성의 편지가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분은 결혼해서 자식이 있는 분인데 너무 생활이 어려워서 자살을 할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분은 우연한 기회에 김주원 씨가 공연한 ‘지젤’을 보게 되었고 공연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야지 절대 자살해서는 안 되겠구나!’라고 마음을 바꾸게 됐다고 합니다.

정말 수준 높은 예술은 종교적 주제가 아니더라도 예술적인 아름다움만으로 삶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줄 수 있는 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더욱이 뮤지컬, 오페라, 연극 등의 경우와는 달리 발레는 세계적으로 공통 언어입니다. 종교나 국경, 인종을 초원하여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입니다. 따라서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발레라고 생각합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이러한 발레의 소중한 가치를 아시고 발레단을 창단하신 것입니다. 또한 유니버설 발레단을 통해서 흥진님의 삶과 희생, 그리고 참사랑이 예술로 승화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6년 전에 무대를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무용계에 계신 많은 분들은 저를 참 부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유니버셜 발레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발레리나로서의 인생을 살면서 저는 10대 20대 30대까지는 정말 많은 눈물로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너무 힘들 때가 많아서 ‘차라리 화가였다면 좋았는데, 그러면 이렇게 소동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면 됐을 텐데. 내가 왜 발레를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1989년 세계 최고의 발레단만을 무대에 올리는 마린스키 극장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있었을 때에도 저는 저의 부족함에 ‘잘 해낼 수 있을까’ 너무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그 공연은 너무나도 큰 도전이었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러시아에서 연습을 했는데, 거의 매일 같이 예술 감독 사무실 앞에 갔습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서 ‘저는 정말 이 공연을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서성이다가 문득 ‘이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가는 것 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겠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분장실에 참부모님의 사진, 흥진님의 사진, 어린 신철의 사진 등을 쫙 펼쳐 놓았습니다. 거기에서 힘을 얻어 저는 그 공연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발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 연습을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선생님이 알고, 삼일을 쉬면 모두가 안다.” 저를 지도해주시던 발레 선생님은 “발레 무용수는 연습을 심장이 뛰듯이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죽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멈추지 않고 연습해야 훌륭한 발레리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시사저널에서 카이스트가 행한 ‘에너지 소비가 가장 많은 운동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에너지 소비가 가장 많은 운동 1위는 미식축구였고, 축구와 발레가 공동 2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연구에 따르면 발레리나가 발레 공연 전막을 하는데 소비한 에너지양은 축구선수가 전반전, 후반전, 연장전반, 연장후반을 교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뛰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발레는 중중노동이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 할 수 없기에 보통 마흔 살 전후로 모든 무용수들이 은퇴를 하게 됩니다.

예전에 ‘성공시대’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발레리나 강수진 씨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화면에 공개된 강수진 씨의 발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같은 발레리나인 제가 봐도 강수진 씨의 발은 특별합니다. 보통 발레리나의 발은 발레를 하면서 발가락의 모양에 따라 굳은살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른데요. 강수진 씨의 발은 발레리나로서 그리 좋은 발을 아닙니다. 그래서 연습과 공연 과정에서 발에 굳은살이 많이 생겼던 것입니다. 강수진 씨는 아마 다른 무용수에 비해 열배의 노력을 더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세계적인 발레리나의 자리까지 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수진 씨는 저를 따라서 유학을 갔던 후배고, 또 리틀엔젤스 활동도 함께 했었습니다. 수진 씨의 발은 발레리나가 무대에 오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수진 씨 발사진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토슈즈(여성 발레리나의 발레 신발)에 발이 올라서는 넓이가 2-3cm 정도입니다. 그 2-3cm 위에 올라서서 온 몸의 체중을 실고 두 다리 또는 한 다리로 서서 뛰고 돌아야 되는 훈련을 하는데, 발끝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발레는 신앙생활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발레리나가 하루도 멈추지 않고 연습을 해야 하듯이 우리가 신앙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정말 매순간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신앙을 가꾸어 나가야 됩니다. 발레리나가 발레를 위해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하듯이, 신앙생활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저는 발레리나로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또한 영혼 결혼을 해서 외로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80년대 가수 조정현의 노래를 즐겨 들었습니다. 특히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라는 노래를 들으면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노래 가사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어려운 길을 걸어왔지만 그 길에 겪었던 아픔들까지 제가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9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아버님께서 저에게 마흔까지만 발레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6년 전, 제가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발에 입은 부상이 재발하여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수술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은퇴를 하게 됐습니다. 정말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은퇴한 후에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너무나도 놀라웠어요. 은퇴를 해서 연습을 하루, 이틀, 삼일, 일주일, 한 달을 쉬었습니다. ‘발레를 안 하면 정말 이렇게 몸이 편하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7살 이래로 무용을 한 저는 매일매일 훈련하는 것이 일상생활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저는 무용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연습이었습니다. 연습 도중에 발가락이 까지고, 굳은살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막상 은퇴를 하고 나서는 ‘정말 내가 힘든 일을 하고 있었구나!’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저는 발레를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힘든 길을 오면서 발레는 저의 삶을 너무나도 풍성하게 채워주었습니다. 저를 ‘발레리나 문훈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한 특권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진심으로 발레리나로서의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과 참부모님, 그리고 흥진님께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참아버님께서는 저를 보시면서 ‘많이 힘들지.’ 이렇게 한 마디를 던져 주실 때마다 저는 정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참아버님께서는 발레 무용수를 하신 분처럼 저를 이해해주고 계셨습니다. 저는 참아버님의 한 마디 진실한 위로의 말씀으로부터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발레의 길을 가게 해주신 참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저는 사실 지상에서 흥진님을 만나 뵌 적이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상에서의 삶은 흥진님과의 아주 긴 약혼입니다. 로맨티스트로서 약혼 기간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흥진님에 대한 저의 모든 사랑을 춤으로 표현했습니다. 발레 공연에서 저의 상대자는 항상 흥진님이셨습니다. 발레를 통해 흥진님을 마음껏 사랑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소원이 하나 있다면 유니버설 발레단이 마린스키 발레단처럼, 혹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처럼 250년, 400년의 역사를 갖는 발레단이 되는 것입니다. 추모비나 기념관은 후대까지 영원히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렀다고 혹은 세대가 바뀌었다고 없애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흥진님을 기리는 사업입니다. 제가 이 땅에 없더라도 계속 운영돼서 영원히 흥진님의 참사랑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발레는 여자로서 저의 인생 전부를 바치면서 힘들게 지켜온 길입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흥진님의 희생과 저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흥진님과 제가 배앓이를 해서 난 자식과 같습니다. 저에게는 신철이와 신월이가 있습니다. 물론 그 아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유니버설 발레단 역시 저에게 또 하나의 자식과 같습니다. 저의 자식이 제가 없더라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발레리나로서, 은퇴 후에는 발레단 단장으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신철이와 신월이의 엄마로서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언제나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아이들 덕분에 제가 이 길을 더 굳건하게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철이는 흥진님 가정의 장남으로써 저를 지켜주고 제 삶에 큰 기쁨을 준 첫사랑입니다. 이 귀한 아들을 보내주신 현진님 가정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신철이는 엄마를 많이 그리워하면서 컸는데 잘 커줘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앞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빠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성장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신철이가 저의 첫사랑이었다면 신월이는 저의 희망입니다. 저는 어린 신월이가 앞으로 커서 아빠의 기념사업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월이는 저의 희망인 것입니다. 재작년에 일본 순회공연을 갔을 때 당시 세 살이던 신월이가 무대에 데뷔를 했습니다. 너무나도 신기한 것이 신월이는 걱정이 될 정도로 발레를 좋아합니다. 공연을 보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제가 가르쳐 준 것도 없는데 공연에서 본 동작들을 따라합니다. 또 음악을 들으면서 이 곡은 백조의 호수 배경음악이고 저 곡은 호두까기의 배경음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음악을 틀어주면 그 음악이 끝날 때까지 계속 춤을 춥니다. 백조의 호수를 보고 나서는 그림을 그려도 백조만 그립니다. 아침에 머리 빗겨줄 때 “신월아! 머리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딸까? 아니면 머리 묶을까?” 그러면 신월이는 무조건 백조머리라고 말합니다. 음악성도 있고 제가 놀랄 정도로 끼가 많습니다.

사실 저는 신철이 이후에는 다른 자녀를 얻을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버님께서 몇 년 전, 효진님 가정께 말씀해 주셔서 저희 가정에 귀한 딸이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은 신월이를 키우면서 너무나 행복하게 지금 살고 있습니다. 신월이를 주신 효진님과 연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제가 신철이는 키우면서 이렇게 제가 낳지도 않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이렇게 행복한데, 아빠나 엄마를 꼭 닮은 아이를 직접 낳아 키울 때, 그 느낌이 어떨까를 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철이는 흥진님을 꼭 닮았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신기하게도 신월이는 저를 꼭 닮았습니다. 어디를 데리고 나가도 사람들이 저와 너무 닮았다고 말합니다. 저와 닮은 딸을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과 참부모님, 그리고 효진님 가정에게 너무 감사드립니다. 신월이에게도 감사합니다.

식구 여러분! 지난 24년이라는 세월동안 저희 가정과 유니버설 발레단 지켜봐주시고 사랑해주시고 기도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정성으로 이렇게 굳건하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가정과 유니버셜 발레단을 사랑하고 지켜봐 주십시오.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또 식구 여러분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더욱더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저를 믿어주신 참부모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발레의 길을 걸어오면서 신앙이 저를 지탱해 주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저의 신앙은 바로 참부모님이십니다.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더 힘들게 고생하시는 참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고개고개를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식구 여러분들도 뜻 길에서 고생 많이 하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힘들 때에는 참부모님을 생각하십시오. 어떤 어려움도 극복을 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6월을 시작하는 첫 날입니다. 6월은 여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사랑과 은사 속에서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식구님 모두가 보람된 결실을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The Prayer-Cec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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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문정현님의 댓글

2년전 심청공연이 동경에서 있을때 기억이 납니다.
이른 아침에 집으로 전화가 와서 다짜고짜 딸애를
공연장으로 보내 달라고...

아마도 심청의 대역이 필요했던가 봅니다.
잠깐 지도 받으면 가능하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서
딸애에게 물었더니 의외로 관심을 가져서...
심청 공연에 찬조출연 하는 영광을 초등 6학년
여름 방학때 가졌답니다.

신월님 ! 샛별처럼 앙징맞고 예쁘기 그지없는
사랑의 화신체로 고운 성장을 기대합니다.

좋은글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운 심정으로
안고 갑니다.
알프스 목사님 !~ 고맙심더 !!~

이판기님의 댓글

엷은 안개로 흐릿해지는
눈를 비벼가며 잘 읽었습니다
신작로 위의 허름한 철학자의 길을
묵묵히 가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심청의 화신'으로 생각되는 훈숙님의 감동적인 간증에 감사드립니다. 최근 우리들과 특별한? 인연을 갖게 된 신철님께 친근감이 더해지고, 엄마를 닮았다는 신월님께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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